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법 2 by 개꽃

 

 선배-.


 까만 뿔테를 끼고, 두꺼운 전공 서적을 옆구리에 낀 채로 네가 나를 부른다. 까만 머리가 바람에 흩날린다. 밥 사주세요, 선배. 너는 뻔뻔스러운 낯짝으로 내게 밥을 사달라며 조른다. 개구지게 웃는 모습이 가슴이 아릴 정도로 눈에 아른거린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달라는 네 말에 나는 못이기는 척, 오늘도 네게 밥을 사준다. 내 앞에서 우걱우걱 잘도 먹어대는 네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냥 기분이 좋다. 아마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못이기는 척 네게 밥을 사주는 걸지도 모른다.


 매형-.


 평생 입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턱시도를 입은 그 날. 네가 나를 불렀다. 조금은 행복한 표정을 지어야 할 것 같아 나는 너를 향해 웃었다. 행복해요? 네가 나에게 물은 그 질문에, 나는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였다. 너의 친누나와 결혼하는 나. 너를 사랑하는 나. 너의 누나에게, 너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은 죄책감에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웃었다. 행복해. 내 말에 너도 웃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너를 사랑할 수 없기에, 너의 누나를 사랑했다.


 그게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마지막 방법이였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법

 

 


 "박유천, 일어나!"


 오늘도 나는 너를 깨운다. 아침잠이 많은 너의 누나 대신에 나는 가장 먼저 일어난다. 조용한 집안. 나는 차가운 물 한 잔을 들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신혼 부부인 우리 부부를 위해서 따로 나와 살겠다는 네 고집을 꺾은 것은 나였다. 괜찮다는, 싫다는 너를 붙잡은 것은 나였다.

 온전한 너만의 공간인 네 방 앞에 서서 너를 부른다. 너는 트렁크만을 입은 채 이불을 둘둘 말고 자고 있겠지. 너의 자는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이지만, 나는 네 방에 결코 들어가지 않는다. 처남과 매형. 우리에겐 서로 예의라는게 있어야했다.


 "처남, 일어나."


 처남.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 내게 있어 처남은 죽어도 말하기 싫은 말이지만, 나는 오늘도 그 단어를 입에 담는다. 박유천. 유진이 동생. 그리고 처남. 너를 표현하는 그 수많은 말들 중 하나. 내게 있어 너는 처남이자, 사랑. 하지만 오늘도 나는 너를 처남이라고 부른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린다. 온통 헝클어진 머리에, 팅팅 부어버린 얼굴. 그리고 지독한 술냄새. 너는 요즘 자꾸 술을 마신다. 유진은 그런 네가 걱정이 되는지 자꾸 잔소리를 한다. 너는 누나의 잔소리에도 아무 말이 없다. 네가 걱정되긴 나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굿모닝."
 "잘도 굿모닝입니다, 처남."
 "……."


 아직 잠이 덜 깬건가, 네가 소리 없이 버석거리는 웃음을 짓는다. 스무 살, 넌 참 많이 웃었는데 지금의 넌 거의 웃지 않는다. 네가 웃는 모습을 참 좋아했는데, 너는 도통 웃지를 않는다. 다시 웃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보는 네 웃음에 기분이 갑자기 좋아진다.


 가지고 온 컵을 너에게 건내준다. 꿀물 대신 차가운 물을 마시는 너는 참 독특하다. 개운하다고 차가운 물만 마시는 네 모습을 말없이 바라본다. 너는 참 선한 인상을 가졌다. 나는 처음부터 너의 그 선한 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선배. 나를 향해 네가 선배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온 몸에서 전율이 흘렀다.


 "……."


 네가 나를 멀뚱하게 바라본다. 네 얼굴을 바라보다 나는 문득 정신을 차린다. 안내려가냐는 듯한 네 눈빛에 당황하고 만다.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난 네 손에 들려있는 컵을 황급히 가져간다. 미안. 내 머쓱한 웃음에 너는 그냥 뒤돌아 문을 닫아버린다. 쾅. 그 소리와 함께 나는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간다.


 "……."
 "오빠, 일어났어?'
 "응. 오늘 일찍 일어났네? 조금 더 자지."


 에이, 아무리 그래도 아내가 너무 늦게 일어나면 남들이 흉봐. 유진이 깔깔거리며 웃어보인다. 부시시한 머리를 단정하게 한 갈래로 묶은 유진이 내 손에 들려있는 컵을 가져간다. 유진의 부드러운 손이 내 손을 스쳐지나간다. 설레여야하는 따뜻한 여자의 손길에, 나는 무감각하다. 오히려 나는, 너의 굳은살 배긴 손이 더욱 더 설렌다.


 유진이 부엌으로 내려가고 나는 신문을 읽는다. 우리의 아침 일상은 항상 이렇다. 넌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유진은 아침 밥을 하고, 나는 신문을 읽는 척을 하며 너의 동선을 그린다. 씻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리는 너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1층으로 내려오겠지. 나는 너를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슬프다.


 "……."
 "입맛이 없어?"
 "…그냥 어제 술을 좀 먹었더니 잘 안넘어가네요."


 깨작깨작 밥을 먹는 네 모습이 안쓰럽고 걱정이 되 물은 질문에 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을 한다. 이미 반 이상 비워버린 내 밥그릇이 민망할 정도로 너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 안그래도 마른 체질이 더 마른 것 같아 자꾸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신경을 쓰기엔 우린 너무 먼 사이다. 사돈이라는 사이는.


 "……."


 네가 웃었으면 좋겠다. 네가 행복한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내 눈에 보이는 너의 아프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나는 너무 힘들다. 너에게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나에겐 넌 너무 소중한 사람이다. 너의 곁에 있기 위해, 애정이 없는 결혼을 선택했다.


 "이것 좀 먹어."
 "……."
 "많이 먹고 힘내서 공부 열심히 해, 처남."


 처남이란 말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찌릿하게 아프다. 나는 가슴의 통증을 참아내고 너를 향해 손을 뻗는다.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진심이 담긴 말뿐. 너의 밥그릇 위에 노란 계란 말이를 하나 얹어준다. 너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날 바라본다. 야윈 너의 얼굴이 자꾸 눈에 밟힌다.


 "고마워요, 매형."


 매형. 처남보다 수백 배는 더 아픈 말을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사실 너는 아무 것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내게는 상처가 되는 말을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겠지. 아프지만, 나는 오늘도 참는다.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너는 내 마음을 모르니까.



 

 *



 책상을 정리하다 컴퓨터 앞에 놓아두었던 달력에 시선이 갔다. 날짜 위에 귀여운 스티커를 붙여놓은 날이 있었다. 유진과의 결혼 기념일. 유진이 올해 달력을 받은 후 가장 먼저 붙여놓았던 스티커였다. 올해 1주년이 되는 결혼 기념일이라 더욱 더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내겐 결혼 기념일이 유진만큼 의미있는 날은 아니였다. 어쩌면 의미를 둘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인생이 바뀐 날. 내 마음을 져버리고 결혼이란 것을 한 날.

 유진을 소개 시켜준 사람은 바로 유천이였다. 유천의 가족과 선배라는 사이로 몇 번 만난 적이 있긴 했지만, 이성 관계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였다. 속은 당황스럽고 착잡함으로 타들어갔지만, 유천은 그런 내 속도 모르고 기분 좋게 유진을 내게 소개 시켜주었다.


 한 두번 만나고 그만 만나고자 했지만, 유천과 함께 가진 술자리에서 유천이 내게 털어놓은 말 때문에 유진을 그만 만날 수가 없었다. 난, 선배가 우리 매형이였으면 좋겠어요. 정말 진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하던 유천. 유천의 그 진심은 비수가 되어서 내 심장을 찔러댔다. 피가 흐르고, 찢어질 듯 아팠지만 참아냈다. 그 말을 하며 웃음을 짓는 유천의 모습이 너무 아련해보여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심창민씨, 며칠 뒤 결혼 기념일이지?"
 "…아, 네."


 앞을 지나가던 부장이 내 앞에 걸음을 멈추더니 말을 걸었다. 이 회사는 유진의 아버지, 그러니까 장인 어른의 회사였다. 뭐, 어떻게 말하면 나는 낙하산으로 회사에 들어간 것과 다름 없었다. 아직 일개 사원이였지만, 부장은 꽤 나에게 신경을 써주곤 했다. 회장의 사위에게 잘 보이는 것이 그만의 아부였으리라.


 "축하해."


 빈 말이지만 고맙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는 무의미한 날이 다른 이에게로부터 축하를 받는 날이 되어버렸다.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스티커가 붙여져있는 날짜 아래에 까만 펜으로 작게 적었다. 결혼 1주년.


 결혼이란 것을 한 후,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하나가 편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둘을 생각해야 했다. 둘은,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결혼으로 이루어진 유진과 나는, 아주 가끔씩은 행복했지만, 때때로는 큰 부담이었다. 혼자가 편한 나는, 유진이 짐처럼 느껴졌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결혼 1주년은 뭔가 내게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유진이 내심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무엇을 해줘야하는지,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아무 것도 모른다. 유진 이외의 다른 사람과 연애라는 것을 해본 적도 없고, 여자에 대해서는 더욱 더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여자들이 어떤 선물을 받으면 가장 좋아하는지,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


 휴대폰을 들었다. 가장 묻고 싶지 않은 사람, 하지만 지금 당장 유일하게 생각나는 사람. 유천의 번호를 눌렀다. 유천은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여러번 교제의 경험이 있었다. 최근 유학을 가기 전까지도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누나의 취향이라면 누구보다 유천이…, 더 잘 알 것이다.


 '여보세요?'


 너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너의 목소리를 참 좋아한다. 차분한 목소리. 슬픔을 먹고 있는 듯한 목소리. 너는 슬프지 않을지 몰라도, 너의 목소리를 듣는 나는 자꾸만 슬퍼진다.


 "처남?"
 '매형. 무슨 일이예요?'
 "많이 바뻐?"
 '아뇨. 지금 잠시 밖에 나와있어요.'
 "또 담배 피러 나온거야?"


 내 추궁에 너는 웃는다. 보이지 않아도 나는 다 볼 수 있다. 너의 버석거리는 웃음. 그리 활짝 웃지는 않지만 입꼬리를 올려 슬그머니 웃는 너의 얼굴이 보인다. 군대에서 배웠다는 담배를 너는 쉽게 끊지 못하고 있다. 기관지 쪽이 좋지 않으면서도 너는 담배를 달고 산다. 유진은 그런 너를 닥달한다. 나도 네게 담배를 끊으라고 닥달하고 싶지만, 쪼잔한 매형은 되기 싫어 나는 말을 삼킨다.


 "물어볼게 있어서 전화했어."
 '뭔데요?'


 유진이가 좋아할만한 선물이 뭐가 있을까? 조금 색다른 걸로…. 고르고 고른 말이었다. 색다른 걸로 원한다는 사족도 달았다.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결혼 기념일이라는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비록 그 당사자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결혼은 아니었다. 유진은 집착하거나 매달리는 성격이 아니였다. 하기 싫었다면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결혼이였다. 하지만 나는 유진과 결혼을 했다. 어쩔 수 없었던 것은 아니였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최선책이였다. 유천의 곁에 가장 가까운 사이로 남아있을 수 있는 사이였기에 결혼을 선택했다. 매형과 처남 사이. 적어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는 있었으니까.


 유천에게 내 마음을 고백할 자신도 없었고, 그 후의 일들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유천에게 외면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유천을 보지 못한다면 내가 죽을 것 같았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유천과는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을 했다.


 '아…. 결혼 기념일 선물이요?'
 "…응. 얼마 안남아서…."


 남의 속도 모르고 너는 쾌활하게 웃어댄다. 이거 비밀인데요, 누나는요. 솔직히 보석을 좀 좋아해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너는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네 말을 들리지 않고, 오직 네 웃음 소리만 들린다.


 네 웃음 소리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너를, 너의 웃음 소리를, 너의 목소리를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서 나는 결혼을 택했는데…, 멀리서나마라도 너와함께 하고자 했었고 너를 바라보고 싶었던 나였는데…. 눈물이 맺힌 눈을 감아버린다. 목이 메인다.


 "매형?"
 "……."
 "매형?"


 네 목소리가 아련하게 멀어진다. 손에서 힘이 빠져 툭, 하고 휴대폰이 손에서 떨어진다. 나를 부르는 너. 대답하지 못하는 나. 나를 매형이라고 부르고 매형이라고 여기는 너. 너를 처남이라고 부르고 사랑이라고 여기는 나. 내 마음을 모르는 너. 너를 사랑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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