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법 1 by 개꽃



 나는 항상 꿈을 꾼다. 너와, 내가 나오는 꿈을. 그 꿈에서 너는 늘 그렇듯, 나를 향해 활짝 웃고 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너의 손을 잡는다. 따뜻한 온기. 아니, 사실은 따뜻하지 않은데도 나는 너의 손을 잡으면 따뜻하게 느껴진다. 현실이라면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을 나는 꿈에서 하고 만다. 너의 얼굴을 내 두 손으로 우악스럽게 잡고는 내 입술을 향해 끌어당긴다. 그럼 너의 얼굴은 놀라기는 커녕, 오히려 눈을 감는다. 그런 너의 모습을 본 나는 그대로 너의 입술을 향해 달려든다. 그렇게 달려든 너의 입술은 달디 달다.

 그렇게 나는 항상 꿈을 꾼다. 꿈은 꿈일뿐, 잠을 깨고 나면 그 꿈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너의 손을 잡던 내 손은 허공을 휘젓고 있을 뿐이다. 끝없는 상실. 하지만 나는 견디고 만다. 그런 견딤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끝없는 상실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를, 현실의 네가 깨운다. 유천아. 일어나. 문 밖으로 들리는 네 목소리에 나를 휘감던 상실의 슬픔은 사라지고 만다.


 "유천아, 일어나."


 나를 부르는 네 목소리는 한없이 달콤하고 아련하다. 끝없는 상실의 반복에 지쳐버린 나는 네 목소리만으로도 기쁘다. 적어도 나는, 네가 날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기쁘다. 내 사랑은 견딤과 인내로 이루어져있다. 이루어질 수 없기에 끝없이 견딜 수 밖에 없다.


 "처남, 빨리 일어나."


 나는 오늘도 그렇게 너를 사랑하고 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법







 어제 과음한 나를 위해서 누나는 얼큰한 콩나물 국을 끓여놓았다.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어. 국을 뜨며 누나가 나를 향해 입을 삐죽거린다. 막 씻고 나와 식탁 의자에 털썩 주저 앉은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머리만 닦아낸다. 밥을 퍼담던 창민이 아무 말없는 나 대신 변명을 해준다.


 "대학생이니까 그렇지. 저때 아님 언제 저렇게 마셔보겠어."
 "그래도 그렇지!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마시냐. 속 다 버리게."


 동생이 걱정되어 하는 말이기에 잔소리로 여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나는 내 속을 모른다. 나 대신 변명을 해주는 창민도 그 마음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투닥거리는 신혼 부부의 모습만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창민이 밥을 담아와 내 앞에 놓아준다.

 앞에 놓여있는 컵을 들어 마신다. 차가운 물이 입 안에 담기고, 식도를 지나 가슴팍을 시원하게 한다. 나는 꿀물 보다 차가운 물이 훨씬 좋았다. 창민은 꿀물을 더럽게 못만들었다. 사랑으로 감싸주기에는 꿀물 맛이 영 형편없었다.


 "요새 김교수님 잘 계시지? 한번 찾아뵈야하는데 짬이 안나네."
 "뭐, 항상 그렇죠. 똑같아요. 김교수님."


 코 끝에 안경 걸쳐서는 가래 낀 목소리로 강의하는 교수님이였다. 창민은 같은 과 선배였다. 한때 창민의 담당 교수였다고 했다. 나는 그다지 좋아하는 교수님은 아니였지만, 창민이 많이 따랐던 교수라고 했다. 예의상, 가끔씩 교수의 안부를 전해준다.

 사실 우리는 같은 과 선후배 사이로 먼저 만났다. 내가 대학교 신입생이였을 때, 창민은 4학년이였다. 신입생 환영회 때, 내 앞에 앉은 창민이였다. 그 이유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친해졌다. 나는 군대를 가고, 창민은 졸업을 했다. 전역을 하고, 복학을 했을 때 창민을 다시 만났다. 창민은 우리가 다시 만난 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역 후, 나는 창민을 찾기 위해 수소문을 했다.


 "얼른 와서 먹어. 유진아."
 "응, 알았어."


 창민이 누나를 부른다. 누나가 창민을 보고 눈이 마주친다. 누나가 웃었다. 눈만 마주쳐도 행복할 신혼 부부. 나는 그들 사이에서 불청객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끝없이 보듬는다. 스물 여섯. 적지 않은 나이에 그들의 보호를 받는 것은 꽤나 고역이다. 하지만, 나는 이 집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창민에게 누나를 소개 시켜준 것은 나였다. 스스로를 미련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보고 싶었다. 추악하고 더러운 생각이였지만, 그를 나와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묶을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었다. 남편과 아내가 가족이라면, 매형과 처남도 가족이였다.


 "처남, 얼른 졸업해야지. 그래야 빨리 아버님 회사 들어오지."
 "…빨리 해야죠, 뭐."
 "그래, 유천아. 아버지 많이 기다리시더라."


 지금 나는 졸업반이었다. 휴학을 반복했다. 어차피 졸업을 하면 아버지 회사에 곧장 들어가면 되는 터라, 성적 따위는 별 상관이 없었다. 창민도 졸업하자마자 아버지의 회사에 들어갔다. 창민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고 들어간 회사였고, 나는 아버지의 빽을 믿고 들어갈 회사였다. 일찍 졸업하기 싫었다.

 누나가 창민의 밥그릇 위에 반찬을 얹어준다. 너도 많이 먹어. 창민이 그런 누나를 향해 싱긋 웃어보인다. 밥을 떠먹는 창민의 얼굴이 환하다. 원래 마른 체질이라 처음 봤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말랐었다. 결혼을 하고, 삼시 세끼 잘 먹은 덕택에 지금은 얼굴에도, 몸에도 전체적으로 살이 많이 올랐다.

 숟가락 한가득 밥을 퍼서 입 안으로 밀어넣는 창민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에 싸한 기분이 든다. 푹푹 줄어들고 있는 창민의 밥그릇과는 달리, 깨작깨작 줄어들 생각을 하지않는 내 밥그릇.
줄어들지 않는 내 밥그릇을 흘깃 보던 창민이 젓가락을 들어 반찬을 집는다. 그리고 내 그릇에 살며시 얹어준다.


 "……."
 "많이 먹고 힘내서 공부 열심히 해, 처남."


 처남이라는 말이 죽어도 싫지만, 창민은 말 끝마다 처남이라는 말을 붙였다. 약이 오르고 너무 화가 나지만 그래도 나는 참았다. 나는 그에게 더도 덜도 아닌 딱, 처남이니까.


 "고마워요."


 그가 얹어준 노란 계란 말이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정말, 아버지의 웃음을 짓고 있는 창민의 얼굴을 보고 입을 열었다. 하고 싶지 않은 말. 하지만 해야하는 말. 내가 너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말. 나는 눈물을 삼켰다. 과연, 넌 내 눈물을 알까.
 

 "…매형."



 *


 며칠 뒤면 누나와 창민의 결혼 기념일이였다. 그들은 올해로 막 1주년이 된 부부다. 스케쥴을 확인하기 위해 스케쥴러를 열었다가 보고야 말았다. 붉은 펜으로 적어놓은 '결혼 기념일'이라는 글자가 한 눈에 들어왔다. 남들이 보면 지극한 남동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지극한 남동생이 아니라 미련한 게이였다.

 그 미련한 게이는 또 미련한 짓을 하기로 했다. 누나와 창민의 결혼 1주년에 선물을 해주기로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해주고 싶다는 본능은 온 몸을 지배했었다. 나는 올해 결혼 1주년을 맞은 한 행복한 커플을 위해 하루의 자유를 선물했다. 1박 2일로 제주도에 다녀올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았다. 이미 그 선물은 누나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미련한 새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거칠게 머리를 흐트렸다. 점심 시간이라 텅 비어버린 학교 도서관에 홀로 앉아있었다. 아침을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배는 전혀 고프지 않았다. 가방에 넣어두었던 작은 밀폐 용기를 꺼냈다. 과일이 정갈하게 담긴 밀폐용기.

 누나는 항상 학교에 가기 전 내 가방에 과일을 싸서 담아둔다. 원래도 집안일과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누나였지만, 결혼 후 누나는 훨씬 더 가정적으로 변했다. 매일 창민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놓고, 창민의 건강을 챙긴다며 홍삼을 일곱 번씩 달이기도 했다. 누나는 창민을 지독하게 사랑했다. 창민이 누나를 알기 전부터, 누나는 나를 통해 창민을 알고서는 혼자 짝사랑을 시작했다. 지독했던 누나. 그리고 그런 누나의 남편을 사랑하는 지독한 동생. 지독한 남매. 지독한… 사랑.

 처음 누나는 과 MT 단체 사진에서 창민을 봤었다. 자신의 이상형이라며 나에게 소개 시켜달라며 애걸복걸 했었다. 누나에게 창민을 소개 시켜주고 싶지 않았었지만, 누나는 며칠동안 내게 매달렸다. 결국 나는 누나에게 창민을 소개 시켜주었다. 누나의 화려한 남성 편력내게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누나는 남자를 오래 만나지 못했다. 보통 한 달도 채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창민과는 달랐다. 한달도 안되서 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창민을 만난 후로부터 누나는 변했다. 화려하고 요란스러운 화장과 옷차림을 하던 누나가 창민을 만난 후로부터 차분하게 변했다. 매일 술집과 클럽을 전전하던 누나는 창민을 만난 후로부터 신부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 누나의 모습이 너무 불안했지만 나는 누나에게도, 창민에게도 서로를 만나지 말라는 말을 하지 못했었다. 누나와 창민이 연애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괴로웠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며칠 전, 창민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설레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누나가 좋아할만한 선물을 추천해달라며 웃어대는 창민의 목소리를 듣고 있잖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났었다. 결혼 기념일을 준비하는 남편의 따뜻한 마음. 그런 마음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않는 불손한 처남. 우리, 아니 나는 더럽고 추악하다. 하지만 너는 더럽고 추악하지 않기에, 더 슬프다. 우리는 어울릴 수가 없기에.

 자리를 박차고 도서관 밖으로 나간다. 방학이라 학교는 한산했다. 담배를 꺼내물었다. 창민은 담배라면 질색을 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창민은 함께 이야기 하던 동기가 담배를 꺼내 물면 바로 도망치 듯 자리를 벗어나곤 했었다. 그의 앞에서는 최대한 담배를 피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걱정 끼치고 싶지 않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나는 창민의 생각을 한다. 끝없이 내 머리 속을 채우는 창민의 생각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나는 아련한 생각에서부터 천박한 상상까지 모든 것을 해버린다. 나의 상상 속에서 나는 창민을 끝없이 범하고 소유하는 추악한 남자로 나온다. 너를 상대로 그런 추악한 생각을 하는 나도 싫고, 나를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창민도 싫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뿐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것. 담배 연기가, 나의 폐를 가득 채운다. 눈을 감는다. 창민이, 보고 싶다. 나는 눈을 감고 창민의 모습을 그려본다.

 나를 향해 웃는 네 모습이 보인다. 너는, 너는 나를 향해 세상 누구보다 활짝 웃어보인다. 너는 내게 한번도 나무라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항상 웃었다. 그래서 내가 오해한 것일지도 몰라. 그래서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된 것일지도 몰라. 너는 웃는다. 웃는 너의 얼굴을, 나는 우악스럽게 잡는다. 나는 또 창민을 상대로 추악한 상상을 한다.


 "유천아."


 눈을 뜬다. 흐릿하던 창민의 모습이 사라지고 선명한, 지독하게도 선명한 창민이 보인다. 몸에 맞춘 듯이 반듯한 수트를 입은 창민이 나를 향해 웃고 있다. 툭. 내 손에 들고 있던 담배가 떨어진다.


 "처남. 점심 가져왔어. 누나가 챙겨먹으라고 많이 싸줬어."


 양손에 들고 있던 종이 봉투를 들어보인다. 네 입술이 유난히 도드라져보인다. 너는 내 속도 모르고 활짝 웃어댄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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