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친구 사이
속이 쓰렸다. 속에서 올라오는 쓰림 때문에 눈을 떴다. 침대 머리맡에 놔둔 시계를 확인하니 이미 해가 중천에 떴을 시간이였다. 오늘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이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어제 별로 마신 것 같지도 않은데 속이 왜 이렇게 쓰리지? 쓰린 속을 부여잡고 방을 나섰다.
"……."
역시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한 갈증으로 인해 입 안이 바싹 말라왔다.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물통 채로 벌컥 벌컥 마셔댔다. 물통 안에 있던 물 반이나 마셨는데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속이 점점 더 쓰려왔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미쳤지. 미쳤어. 고등학생이 무슨 술이야. 거실의 소파에 가서 벌렁 누웠다.
어제 기범이네 집에서 술을 마셨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집에는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체 어떻게 온거지? 기범이랑 윤수 녀석이 데려다 준 건가? 걔네들이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줄 애들이 아닌데…. 그 먼길을 혼자 걸어왔을 리는 없고…. 대체 어떻게 온거지?
"아…. 알게 뭐람."
그래. 알게 뭐람. 집에 온게 더 중요하지.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위장이 요란하게 쓰린 것을 어떻게 해결할까하는 것이다. 지금 시간을 보니 밥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났다. 원래 주말에는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밥을 먹기가 힘들다. 제 시간에 가서 먹지 않으면 밥상을 새로 차려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게다가 밥도 없고. 이렇게 커다랗고 으리으리한 집에 밥이 없다고 하면 지나가던 개가 웃겠지만 사실이었다. 밥을 지을 때 인원 수에 딱 맞춰 요리를 하는 탓에 식사를 하고 나면 남는 밥이라는게 없었다. 혹여나 남는게 생기면 가끔씩 맥스가 먹기도 하고. 아무튼 내가 이 곳에 왔을 때도 이상하게 생각했던 정씨 집안의 무언의 약속 같은 것이다.
술 때문에 놀란 위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혼자 콩나물 국이라도 끓여 먹으려고 했는데 냉장고에는 콩나물이 없었다. 아이고. 새엄마가 요리를 담당하지만 막상 우리집에는 먹을 것이 없다니. 간단하게 라면이나 끓여먹기 위해 찬장을 뒤져 라면을 꺼내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을 열자 윤주가 서있었다. 손에는 밥과 국을 올려놓은 쟁반을 든 채로.
"어? 네가 왠일이야."
"…어제 술 마셨다며."
"…어어."
"이야. 우리 심창민이 술도 마셔? 어른 다 됐네!"
윤주가 집 안으로 들어와 식탁 위에 쟁반을 올려놓으며 혀를 쯧-하고 찬다. 박유천이나 정윤호가 술을 마시는 건 뭔가 이해가 가는데 심창민 네가 술 마시고 집에 들어왔다고 하니까 안믿긴다. 뭔가.
"그런게 어디있어. 다 똑같지, 뭐."
"아무튼 심창민은 뭔가 달라. 심창민이 마시니까 뭔가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랄까?"
혼자 피식 웃으며 윤주가 식탁 위에 밥과 국을 올려놓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챙겨준다. 냉장고에서 이것 저것 반찬들을 꺼내 식탁 위에 차려놓자 금새 한 상이 됬다. 윤주는 식탁 의자를 빼내 털썩 주저 앉았다. 나도 윤주의 맞은편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콩나물국을 먹으니 속이 금새 풀리는 건 아니였지만, 아까보다는 속이 한결 편해졌다. 속이 따뜻해지는게 조금씩 풀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밥을 국에 말아 열심히 먹고 있는데 윤주가 나를 아까부터 계속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밥 먹을 때 쳐다보는 것은 매너가 아닌데…. 괜히 머쓱해졌다.
"콩나물국 맛있네. 시원하고, 속이 풀리는 거 같다."
"그럼 다행이네. 아침부터 박유천이 콩나물 국 끓여달라고 그래서 아줌마가 끓이셨어."
"…어제 술 마시고 왔는가보지."
"옷에서 술 냄새는 나더라."
윤주의 입에서 나오는 박유천이라는 이름에 또 한번 심장이 덜컹거렸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밥을 먹었다. 그렇게 대화가 끊긴 후,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아, 정윤주는 왜 안가고 여기 와서 남 밥 먹는걸 지켜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윤주랑 나랑 친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밥 먹는데 쳐다보는 건 불편하다. 결국 숟가락을 놓고 윤주를 쳐다보자, 윤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연다.
"너 박유천이랑 오빠랑 무슨 일 있어?"
"…아니."
"근데 다들 왜 그렇게 죽을 상이야."
"……."
윤주가 나를 쳐다본다. 내 머릿 속과 내 속을 다 꿰뚫어보는 듯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아무튼 이 놈의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어. 윤주가 툴툴대며 몸을 의자에 기댄다. 두 다리를 품에 끌어안은 채로 물끄러미 나를 본다.
누구나 하나쯤은 아픈 기억을 안고 산다. 정윤호나, 박유천이나, 정윤주 모두 가슴 속에는 아픈 기억들이 하나씩 있다. 각자의 방법으로 그 기억들로 인한 상처를 치유한다. 윤주는 그 아픈 기억들을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그 상처를 치유했다. 지금 이렇게 아무렇지않게 말하는 그 모든 것들은 윤주의 눈물겨운 상처 회복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잘 좀 지내. 싸우지 좀 말고."
정윤주는 내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와있다. 정윤호도 박유천도 하나도 무섭지 않은데 나는 세상에서 정윤주가 가장 무섭다. 정윤주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 내가 머쓱하게 웃자 정윤주도 웃는다.
"넌 왜 이렇게 내 동생 같지?"
"뭐? 미쳤냐?"
동생이라니? 물론 내가 정윤주보다 태어난 년도는 한 해 다르지만 (나는 2월에 태어나서 한 해 빨리 학교에 들어갔다.) 성장 발육도 남다르고 정신 연령도 남다른데!!! 내가 숟가락을 놓고 바락 소리를 지르자 정윤주가 배를 잡으며 깔깔 웃는다.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나는지 웃으면서 눈물을 훔친다.
앞에 앉아있는 내가 무안할 정도로 한참동안 크게 웃던 윤주가 이제 집에 가려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주를 배웅해주기 위해서 나도 들고 있던 숟가락을 놓고 일어났다. 윤주가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달래듯 말을 한다.
"아무튼 잘 지내, 좀. 알았지?"
"알았어."
"푹 쉬어, 창민아. 우쭈쭈쭈쭈."
"아, 야!!!"
윤주가 엉덩이를 툭툭 취면서 아기 다루듯 한다. 자기는 좋은지 깔깔대며 웃어대지만 나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대한의 건아의 가오가 있지. 동갑내기 여자애에게 아기 취급을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내 잔뜩 찌푸린 얼굴을 보고도 그래도 좋은지 윤주는 활짝 웃으면서 내 어깨에 손을 얹고 툭툭 치고는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어휴. 한숨이 났지만 곧 웃음이 터졌다.
정윤호, 박유천 그리고 나 사이에 떠도는 어색하고 불편한 기류를 감지한 정윤주가 눈치를 채고 기분을 풀어주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불편한 기류의 원인은 나였다. 그 모든 것은 내가 풀어야할 숙제였다.
몸을 일으켰다. 마당에 나가기로 했다. 나가서 박유천을 기다려야겠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박유천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이런 냉전을 그만 해야했다. 한 집에 살면서 이런 냉전은 서로를 너무 극으로 몰아내는 행동이였다.
우리집을 나서면 바로 앞에 보이는 커다란 돌이 있다. 정원 장식용인 바위지만 위가 평평한 것이 앉아있기 편한 장소라서 어릴 때부터 자주 그 곳에 앉아 있곤 했다. 이 자리에 앉아서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린 적도 있었다. 여기에 앉아 있으면 대문으로 누가 들어오는지 다 보였다.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계속 똑같은 노래만 흘러나온다. 질릴 때도 되었는데, 질리지 않는 노래. 들어도 들어도 마음에 자꾸 꽂히는 노래. 오늘은 무슨 일인거니, 울었던 얼굴 같은데. 내가 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니, 이 세상 가장 소중한 너인데….
박유천은 이 노래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다. 무릎을 세워 머리를 숙였다.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머릿 속에서 끄집어냈다. 나는 왜… 박유천의 마음을 모른 척 했을까.
"……."
머리가 아프다. 어제 과음을 하는 것이 아니였다. 윤주가 해장국을 가져오긴 했는데, 그래도 아직 속이 더부룩하다. 눈도 뻑뻑한게…. 과음은 독이다. 몸이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다. 박유천이 좀 빨리 왔으면 좋겠다. 빨리 얼굴 보고 이야기 하고 싶은데…. 그런데 박유천과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려면 할 말을 생각해놔야하는데, 머리가 멈춘 것 같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데, 자꾸 노래 가사만 머릿 속에 콕콕 박힌다. 눈을 한 번 깜빡이면 저 멀리 앞서가서는 나를 구박하는 박유천이 보이고, 눈을 두 번 깜빡이면 넘어지려는 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며 꽉 잡는 박유천이 보이고, 눈을 세 번 깜빡이면 피투성이가 된 박유천이 보인다.
"……."
마음이, 저릿하다.
넌 항상 날 챙겨주었다. 대부분 심한 장난이 섞였지만, 너는 나를 많이 챙겨주었다. 사실은 내가 널 챙겨주어야했다. 나는 너의 집에 고용된 사람이니까. 하지만 넌 친구라는 이름으로 날, 챙겨주었다. 항상 제멋대로이고 이기적인 너였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친구였기에 너무 좋았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걸까. 너와 나는 친구니까…. 친구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나는 사실 조금은 무서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애써 모른 척하려고 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친구인, 아니 솔직히 말하면 주종 관계인 너와 나의 사이를 생각하면 항상 무서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널…. 나는 널….
노래는 끝이 없다. 끝없는 재생을 반복하는 그 노래를, 나는 오늘도 또 듣는다. 네 아픈 마음을 모른 척 했던 나이기에, 모든 것을 안 지금에도 네 마음을 받아줄 수 없기에….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넌 장난이라 해도….
*
"…뭐냐."
툭, 하고 차갑게 내뱉는 박유천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아…. 어느새 잠이 들었었나보다. 기다림에 지쳐 대문 앞으로 자리를 옮겼었다. 날은 이미 어둑해져있었다. 아무리 여름이지만, 차가운 땅바닥에 앉아 기다린 것이 무리였을까, 머리가 어질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쓰러질 듯 흔들리는 온 몸을 겨우 벽을 잡아 지탱했다.
흐릿한 가로등 불빛으로 박유천의 얼굴이 보인다. 살이 빠졌는지 얼굴이 전보다 훨씬 더 날렵해졌다. 머리도 많이 자랐고…. 키도 조금 큰 것 같다. 그리고 손도….내가 깁스를 한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꼈는지 박유천이 손을 등 뒤로 감춘다.
"……."
"……."
"……."
"…비켜."
박유천이 차갑게 내 몸을 민다. 멍하니 서있던 내 몸이 휘청거리고, 나도 모르게 박유천의 깁스한 팔을 잡아버렸다.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박유천의 팔을 잡지 않은 다른 팔에서 억센 악력이 느껴진다. 내가 박유천을 바라보자 박유천이 나를 바라본다. 박유천이 휙, 내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린다. 나도 당황해 황급히 박유천의 팔을 놓아버렸다.
"…미, 미안."
"……."
"…나도 모르게 잡, 잡았네. 미, 미안."
미안하다는 내 말에도 박유천은 아무런 감흥도 없이 대문으로 다가간다. 방금 박유천이 잡은 내 팔이 욱신거리듯 아프다. 그리고, 이유도 모르겠지만 가슴이 조금 욱신거렸다. 대문 초인종을 누르려고 서있는 박유천의 뒷통수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이야기 좀 해!"
잠시 가만히 있던 박유천이 몸을 돌린다. 여전히 차가운 눈빛, 차가운 몸짓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더 이상 박유천의 마음 속에는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입술을 깨물었다. 친구라도…, 제발.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박유천에게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은 정말 싫었다.
"……."
"……."
"…말해."
"……."
"…말해보라고, 심창민."
싸늘한 박유천의 목소리. 고개를 떨궜다. 박유천의 싸늘한 목소리가 차가운 비수가 되어 내 심장을 향해 그대로 돌진해서 꽂히는 것 같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나를 바라보는 박유천의 차가운 눈빛 밖에 보이지 않는다.
"…미안해."
"뭐가."
"…다, 다 미안해."
떨리는 입술을 겨우 진정시켜 말했지만 박유천이 코웃음을 친다. 왜? 니가 뭐가 미안한데? 박유천이 입꼬리를 위로 올리며 웃는다. 비웃음. 박유천의 비웃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고개를 푹 숙였다.
"…네 마음을 모른 척 했던거."
내 입으로 결국은 인정하고 말았다. 내가 박유천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박유천은 내 말에 피식 터지는 웃음을 짓는다. 기가 막히다는 듯 웃는 박유천.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박유천도 아무 말하지 않는다. 한참이나 나를 노려보듯 바라보던 박유천이 입을 연다. 날이 서있던 아까와는 다른 목소리.
"…알면서,"
"……."
"…알면서 왜 모른 척 했어?"
"……."
"왜!!!"
박유천이 내 팔을 꽉 움켜쥔다. 거칠고 센 악력에 팔이 욱신거리지만 나는 차마 박유천의 팔을 떼놓지 못했다. 박유천이 내 팔을, 아니 내 몸을 흔들어댄다. 잔뜩 화난 박유천의 목소리가 내 귀를, 아니 내 마음을 자꾸 괴롭혔다.
"말해, 심창민."
"……."
"…말하라고, 씨발!!!"
어두컴컴한 골목에 다 울릴 정도로 박유천이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나는 박유천을 말릴 수가 없다. 나에게는 박유천을 말릴만한 자격이 없었다. 작게 한숨을 내뱉고 입을 열었다. 내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힘이 빠지는 박유천의 손.
"…넌, 박유천 너는,"
나는 참 못된 것 같다. 이 말이 너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 것인지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 나는 또 너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하고 싶지 않지만, 자꾸 너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넌,"
"……."
"…내 친구잖아."
"……."
"박유천 너는, 내 …친구잖아."
친구. 우린 친구잖아. 수많은 날을 함께 해온, 친구. 친구는…, 서로 좋아하면 안되는거잖아. 친구는 친구일뿐이잖아. 내 떨리는 목소리에 박유천이 고개를 떨군다. 박유천의 생채기 많은 가슴에 나는 오늘 또, 깊고 깊은 상처를 내고 말았다.
"……."
"착각하지마, 심창민."
박유천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박유천이 내 팔을 세게 놓는다. 박유천이 세게 잡았던 그 부분이 욱신거린다. 기가 막힌 듯 코웃음을 치는 박유천. 박유천이 얼굴 한가득 비웃음을 담고 내게 말한다.
"나, 네 친구 아니야."
"……."
"착각하고 있나본데, 너는 지금까지 내 친구인적 없었어."
"……."
"넌 우리집 운전 기사 아들이잖아. 난 주인 아들이고."
"……."
"주제 파악해. 심창민."
박유천이 코웃음을 치며 대문 초인종을 누른다. 곧이어 누구세요, 라며 스피커로 새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박유천이 나를 흘깃 쳐다본다. 그리고는 대답한다. 저예요, 아줌마. 곧이어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대문이 열린다. 박유천이 집 안으로 들어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다시 나를 향해 돌아본다.
"…친구는 무슨,"
"……."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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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쓰렸다. 속에서 올라오는 쓰림 때문에 눈을 떴다. 침대 머리맡에 놔둔 시계를 확인하니 이미 해가 중천에 떴을 시간이였다. 오늘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이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어제 별로 마신 것 같지도 않은데 속이 왜 이렇게 쓰리지? 쓰린 속을 부여잡고 방을 나섰다.
"……."
역시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한 갈증으로 인해 입 안이 바싹 말라왔다.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물통 채로 벌컥 벌컥 마셔댔다. 물통 안에 있던 물 반이나 마셨는데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속이 점점 더 쓰려왔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미쳤지. 미쳤어. 고등학생이 무슨 술이야. 거실의 소파에 가서 벌렁 누웠다.
어제 기범이네 집에서 술을 마셨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집에는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체 어떻게 온거지? 기범이랑 윤수 녀석이 데려다 준 건가? 걔네들이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줄 애들이 아닌데…. 그 먼길을 혼자 걸어왔을 리는 없고…. 대체 어떻게 온거지?
"아…. 알게 뭐람."
그래. 알게 뭐람. 집에 온게 더 중요하지.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위장이 요란하게 쓰린 것을 어떻게 해결할까하는 것이다. 지금 시간을 보니 밥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났다. 원래 주말에는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밥을 먹기가 힘들다. 제 시간에 가서 먹지 않으면 밥상을 새로 차려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게다가 밥도 없고. 이렇게 커다랗고 으리으리한 집에 밥이 없다고 하면 지나가던 개가 웃겠지만 사실이었다. 밥을 지을 때 인원 수에 딱 맞춰 요리를 하는 탓에 식사를 하고 나면 남는 밥이라는게 없었다. 혹여나 남는게 생기면 가끔씩 맥스가 먹기도 하고. 아무튼 내가 이 곳에 왔을 때도 이상하게 생각했던 정씨 집안의 무언의 약속 같은 것이다.
술 때문에 놀란 위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혼자 콩나물 국이라도 끓여 먹으려고 했는데 냉장고에는 콩나물이 없었다. 아이고. 새엄마가 요리를 담당하지만 막상 우리집에는 먹을 것이 없다니. 간단하게 라면이나 끓여먹기 위해 찬장을 뒤져 라면을 꺼내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을 열자 윤주가 서있었다. 손에는 밥과 국을 올려놓은 쟁반을 든 채로.
"어? 네가 왠일이야."
"…어제 술 마셨다며."
"…어어."
"이야. 우리 심창민이 술도 마셔? 어른 다 됐네!"
윤주가 집 안으로 들어와 식탁 위에 쟁반을 올려놓으며 혀를 쯧-하고 찬다. 박유천이나 정윤호가 술을 마시는 건 뭔가 이해가 가는데 심창민 네가 술 마시고 집에 들어왔다고 하니까 안믿긴다. 뭔가.
"그런게 어디있어. 다 똑같지, 뭐."
"아무튼 심창민은 뭔가 달라. 심창민이 마시니까 뭔가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랄까?"
혼자 피식 웃으며 윤주가 식탁 위에 밥과 국을 올려놓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챙겨준다. 냉장고에서 이것 저것 반찬들을 꺼내 식탁 위에 차려놓자 금새 한 상이 됬다. 윤주는 식탁 의자를 빼내 털썩 주저 앉았다. 나도 윤주의 맞은편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콩나물국을 먹으니 속이 금새 풀리는 건 아니였지만, 아까보다는 속이 한결 편해졌다. 속이 따뜻해지는게 조금씩 풀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밥을 국에 말아 열심히 먹고 있는데 윤주가 나를 아까부터 계속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밥 먹을 때 쳐다보는 것은 매너가 아닌데…. 괜히 머쓱해졌다.
"콩나물국 맛있네. 시원하고, 속이 풀리는 거 같다."
"그럼 다행이네. 아침부터 박유천이 콩나물 국 끓여달라고 그래서 아줌마가 끓이셨어."
"…어제 술 마시고 왔는가보지."
"옷에서 술 냄새는 나더라."
윤주의 입에서 나오는 박유천이라는 이름에 또 한번 심장이 덜컹거렸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밥을 먹었다. 그렇게 대화가 끊긴 후,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아, 정윤주는 왜 안가고 여기 와서 남 밥 먹는걸 지켜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윤주랑 나랑 친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밥 먹는데 쳐다보는 건 불편하다. 결국 숟가락을 놓고 윤주를 쳐다보자, 윤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연다.
"너 박유천이랑 오빠랑 무슨 일 있어?"
"…아니."
"근데 다들 왜 그렇게 죽을 상이야."
"……."
윤주가 나를 쳐다본다. 내 머릿 속과 내 속을 다 꿰뚫어보는 듯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아무튼 이 놈의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어. 윤주가 툴툴대며 몸을 의자에 기댄다. 두 다리를 품에 끌어안은 채로 물끄러미 나를 본다.
누구나 하나쯤은 아픈 기억을 안고 산다. 정윤호나, 박유천이나, 정윤주 모두 가슴 속에는 아픈 기억들이 하나씩 있다. 각자의 방법으로 그 기억들로 인한 상처를 치유한다. 윤주는 그 아픈 기억들을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그 상처를 치유했다. 지금 이렇게 아무렇지않게 말하는 그 모든 것들은 윤주의 눈물겨운 상처 회복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잘 좀 지내. 싸우지 좀 말고."
정윤주는 내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와있다. 정윤호도 박유천도 하나도 무섭지 않은데 나는 세상에서 정윤주가 가장 무섭다. 정윤주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 내가 머쓱하게 웃자 정윤주도 웃는다.
"넌 왜 이렇게 내 동생 같지?"
"뭐? 미쳤냐?"
동생이라니? 물론 내가 정윤주보다 태어난 년도는 한 해 다르지만 (나는 2월에 태어나서 한 해 빨리 학교에 들어갔다.) 성장 발육도 남다르고 정신 연령도 남다른데!!! 내가 숟가락을 놓고 바락 소리를 지르자 정윤주가 배를 잡으며 깔깔 웃는다.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나는지 웃으면서 눈물을 훔친다.
앞에 앉아있는 내가 무안할 정도로 한참동안 크게 웃던 윤주가 이제 집에 가려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주를 배웅해주기 위해서 나도 들고 있던 숟가락을 놓고 일어났다. 윤주가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달래듯 말을 한다.
"아무튼 잘 지내, 좀. 알았지?"
"알았어."
"푹 쉬어, 창민아. 우쭈쭈쭈쭈."
"아, 야!!!"
윤주가 엉덩이를 툭툭 취면서 아기 다루듯 한다. 자기는 좋은지 깔깔대며 웃어대지만 나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대한의 건아의 가오가 있지. 동갑내기 여자애에게 아기 취급을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내 잔뜩 찌푸린 얼굴을 보고도 그래도 좋은지 윤주는 활짝 웃으면서 내 어깨에 손을 얹고 툭툭 치고는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어휴. 한숨이 났지만 곧 웃음이 터졌다.
정윤호, 박유천 그리고 나 사이에 떠도는 어색하고 불편한 기류를 감지한 정윤주가 눈치를 채고 기분을 풀어주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불편한 기류의 원인은 나였다. 그 모든 것은 내가 풀어야할 숙제였다.
몸을 일으켰다. 마당에 나가기로 했다. 나가서 박유천을 기다려야겠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박유천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이런 냉전을 그만 해야했다. 한 집에 살면서 이런 냉전은 서로를 너무 극으로 몰아내는 행동이였다.
우리집을 나서면 바로 앞에 보이는 커다란 돌이 있다. 정원 장식용인 바위지만 위가 평평한 것이 앉아있기 편한 장소라서 어릴 때부터 자주 그 곳에 앉아 있곤 했다. 이 자리에 앉아서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린 적도 있었다. 여기에 앉아 있으면 대문으로 누가 들어오는지 다 보였다.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계속 똑같은 노래만 흘러나온다. 질릴 때도 되었는데, 질리지 않는 노래. 들어도 들어도 마음에 자꾸 꽂히는 노래. 오늘은 무슨 일인거니, 울었던 얼굴 같은데. 내가 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니, 이 세상 가장 소중한 너인데….
박유천은 이 노래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다. 무릎을 세워 머리를 숙였다.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머릿 속에서 끄집어냈다. 나는 왜… 박유천의 마음을 모른 척 했을까.
"……."
머리가 아프다. 어제 과음을 하는 것이 아니였다. 윤주가 해장국을 가져오긴 했는데, 그래도 아직 속이 더부룩하다. 눈도 뻑뻑한게…. 과음은 독이다. 몸이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다. 박유천이 좀 빨리 왔으면 좋겠다. 빨리 얼굴 보고 이야기 하고 싶은데…. 그런데 박유천과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려면 할 말을 생각해놔야하는데, 머리가 멈춘 것 같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데, 자꾸 노래 가사만 머릿 속에 콕콕 박힌다. 눈을 한 번 깜빡이면 저 멀리 앞서가서는 나를 구박하는 박유천이 보이고, 눈을 두 번 깜빡이면 넘어지려는 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며 꽉 잡는 박유천이 보이고, 눈을 세 번 깜빡이면 피투성이가 된 박유천이 보인다.
"……."
마음이, 저릿하다.
넌 항상 날 챙겨주었다. 대부분 심한 장난이 섞였지만, 너는 나를 많이 챙겨주었다. 사실은 내가 널 챙겨주어야했다. 나는 너의 집에 고용된 사람이니까. 하지만 넌 친구라는 이름으로 날, 챙겨주었다. 항상 제멋대로이고 이기적인 너였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친구였기에 너무 좋았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걸까. 너와 나는 친구니까…. 친구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나는 사실 조금은 무서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애써 모른 척하려고 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친구인, 아니 솔직히 말하면 주종 관계인 너와 나의 사이를 생각하면 항상 무서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널…. 나는 널….
노래는 끝이 없다. 끝없는 재생을 반복하는 그 노래를, 나는 오늘도 또 듣는다. 네 아픈 마음을 모른 척 했던 나이기에, 모든 것을 안 지금에도 네 마음을 받아줄 수 없기에….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넌 장난이라 해도….
*
"…뭐냐."
툭, 하고 차갑게 내뱉는 박유천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아…. 어느새 잠이 들었었나보다. 기다림에 지쳐 대문 앞으로 자리를 옮겼었다. 날은 이미 어둑해져있었다. 아무리 여름이지만, 차가운 땅바닥에 앉아 기다린 것이 무리였을까, 머리가 어질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쓰러질 듯 흔들리는 온 몸을 겨우 벽을 잡아 지탱했다.
흐릿한 가로등 불빛으로 박유천의 얼굴이 보인다. 살이 빠졌는지 얼굴이 전보다 훨씬 더 날렵해졌다. 머리도 많이 자랐고…. 키도 조금 큰 것 같다. 그리고 손도….내가 깁스를 한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꼈는지 박유천이 손을 등 뒤로 감춘다.
"……."
"……."
"……."
"…비켜."
박유천이 차갑게 내 몸을 민다. 멍하니 서있던 내 몸이 휘청거리고, 나도 모르게 박유천의 깁스한 팔을 잡아버렸다.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박유천의 팔을 잡지 않은 다른 팔에서 억센 악력이 느껴진다. 내가 박유천을 바라보자 박유천이 나를 바라본다. 박유천이 휙, 내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린다. 나도 당황해 황급히 박유천의 팔을 놓아버렸다.
"…미, 미안."
"……."
"…나도 모르게 잡, 잡았네. 미, 미안."
미안하다는 내 말에도 박유천은 아무런 감흥도 없이 대문으로 다가간다. 방금 박유천이 잡은 내 팔이 욱신거리듯 아프다. 그리고, 이유도 모르겠지만 가슴이 조금 욱신거렸다. 대문 초인종을 누르려고 서있는 박유천의 뒷통수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이야기 좀 해!"
잠시 가만히 있던 박유천이 몸을 돌린다. 여전히 차가운 눈빛, 차가운 몸짓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더 이상 박유천의 마음 속에는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입술을 깨물었다. 친구라도…, 제발.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박유천에게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은 정말 싫었다.
"……."
"……."
"…말해."
"……."
"…말해보라고, 심창민."
싸늘한 박유천의 목소리. 고개를 떨궜다. 박유천의 싸늘한 목소리가 차가운 비수가 되어 내 심장을 향해 그대로 돌진해서 꽂히는 것 같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나를 바라보는 박유천의 차가운 눈빛 밖에 보이지 않는다.
"…미안해."
"뭐가."
"…다, 다 미안해."
떨리는 입술을 겨우 진정시켜 말했지만 박유천이 코웃음을 친다. 왜? 니가 뭐가 미안한데? 박유천이 입꼬리를 위로 올리며 웃는다. 비웃음. 박유천의 비웃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고개를 푹 숙였다.
"…네 마음을 모른 척 했던거."
내 입으로 결국은 인정하고 말았다. 내가 박유천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박유천은 내 말에 피식 터지는 웃음을 짓는다. 기가 막히다는 듯 웃는 박유천.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박유천도 아무 말하지 않는다. 한참이나 나를 노려보듯 바라보던 박유천이 입을 연다. 날이 서있던 아까와는 다른 목소리.
"…알면서,"
"……."
"…알면서 왜 모른 척 했어?"
"……."
"왜!!!"
박유천이 내 팔을 꽉 움켜쥔다. 거칠고 센 악력에 팔이 욱신거리지만 나는 차마 박유천의 팔을 떼놓지 못했다. 박유천이 내 팔을, 아니 내 몸을 흔들어댄다. 잔뜩 화난 박유천의 목소리가 내 귀를, 아니 내 마음을 자꾸 괴롭혔다.
"말해, 심창민."
"……."
"…말하라고, 씨발!!!"
어두컴컴한 골목에 다 울릴 정도로 박유천이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나는 박유천을 말릴 수가 없다. 나에게는 박유천을 말릴만한 자격이 없었다. 작게 한숨을 내뱉고 입을 열었다. 내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힘이 빠지는 박유천의 손.
"…넌, 박유천 너는,"
나는 참 못된 것 같다. 이 말이 너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 것인지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 나는 또 너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하고 싶지 않지만, 자꾸 너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넌,"
"……."
"…내 친구잖아."
"……."
"박유천 너는, 내 …친구잖아."
친구. 우린 친구잖아. 수많은 날을 함께 해온, 친구. 친구는…, 서로 좋아하면 안되는거잖아. 친구는 친구일뿐이잖아. 내 떨리는 목소리에 박유천이 고개를 떨군다. 박유천의 생채기 많은 가슴에 나는 오늘 또, 깊고 깊은 상처를 내고 말았다.
"……."
"착각하지마, 심창민."
박유천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박유천이 내 팔을 세게 놓는다. 박유천이 세게 잡았던 그 부분이 욱신거린다. 기가 막힌 듯 코웃음을 치는 박유천. 박유천이 얼굴 한가득 비웃음을 담고 내게 말한다.
"나, 네 친구 아니야."
"……."
"착각하고 있나본데, 너는 지금까지 내 친구인적 없었어."
"……."
"넌 우리집 운전 기사 아들이잖아. 난 주인 아들이고."
"……."
"주제 파악해. 심창민."
박유천이 코웃음을 치며 대문 초인종을 누른다. 곧이어 누구세요, 라며 스피커로 새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박유천이 나를 흘깃 쳐다본다. 그리고는 대답한다. 저예요, 아줌마. 곧이어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대문이 열린다. 박유천이 집 안으로 들어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다시 나를 향해 돌아본다.
"…친구는 무슨,"
"……."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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