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게 고함 9 by 개꽃

9. 유천아, 유천아.





 “너, 존나 싫어….”


 박유천이 이를 악물었다. 나를 매섭게 노려보는 박유천의 눈이 무서워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박유천의 반짝하게 닦인 구두 위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 분명 박유천의 손이 찢어지고 부러져 엉망이 되었을 텐데…. 빨리 병원에 가야되는데….

 차마 고개는 들지 못하고 박유천에게 손을 뻗는다. 손 끝으로 박유천의 옷이 스치지만 잡히지는 않는다. 박유천이 자신의 옷을 잡을 듯 뻗는 내 팔을 세게 내친다. 아…. 절로 신음 소리가 날 정도로 아팠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며 참았다. 지금 박유천은 나보다 훨씬 더 아프다. 내가 이까짓 걸로 아파할 순 없었다.


 “유천아… 병원… 우리 병원 가자. 응?”


 고개를 들자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으로 보이는 박유천의 손은 예상처럼 엉망이었다. 상처를 지혈하지않아 피가 뚝뚝 떨어져 바닥과 박유천의 구두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박유천에 대한 미안함은 밀어놓고 우선 박유천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했다. 박유천의 상처가, 박유천의 피가, 박유천의 눈이 무서웠다. 덜덜 떨리는 온 몸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애써 견뎌냈다.


 “이거 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자신의 다친 팔을 잡는 내 손을 모질게 쳐낸다.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박유천은 가만히 서있다. 비릿한 피냄새에 속이 메스꺼워졌지만 조용히 숨을 참고 다시 한번 박유천의 팔을 잡기 위해 다가갔다. 하지만 박유천은 나의 접근을 차단했다. 다가오는 내 어깨를 밀어내버렸다.


 “피… 나잖아. 박유천. 병원 가자. 응?”
 “…….”
 “미안…. 유천아, 미안하니까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병원 가자. 우선 치료부터 하자. 응?”


 아까보다 더욱 더 심하게 손이 떨렸다. 박유천에 대한 미안함과 두려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박유천이 저렇게 다치게 된 것도 모두 다 나의 탓인데…. 갑자기 들이닥치는 한기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유천아. 제발…."
 “심창민."
 “…유처ㄴ…."
 “그만하자.”
 “…….”
 “이제…, 그만하자.”


 무엇을 그만하자는 것일까. 피를 뚝뚝 흘리면서 박유천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작게 떨리는 박유천의 목소리. 한없이 가라앉아버린 박유천의 목소리에 내 몸이 한없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다 나의 탓이다. 정말 다 나의 탓이다. 알면서… 모든 것을 다 알면서 심창민은 모른 척했다. 아니 모른 척 하고 싶었다. 그 모른 척 때문에 결국 박유천이 다치고, 정윤호가 다치고, 심창민이 다쳤다. 다 나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다 나로 인하여 생긴 일이다.


 “가라.”
 “유천아…! 병원 가ㅈ….”
 “꺼져. 제발.”
 “…….”
 “너 꼴보기 싫으니까 제발 내 눈 앞에서 꺼지라고!!!!”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박유천이 다친 것도 아프고, 박유천이 저렇게 소리 지르는 것도 아프다. 이 모든 것이 아프다. 죽을 것 같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아주 잔인하고 지독하게 아픈 꿈.

 나보고 꺼지라고 했던 박유천이 잠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천천히 뒤를 돌아서 걸어간다. 따라가려는 내 본능을 머리가 잡아 세웠다. 어둠으로 가득 찬 골목 끝으로 박유천이 신기루같이 사라져버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애써 벽을 붙잡고 버티지만 결국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유… 유천아."


 박유천의 마음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척한 심창민. 그 못된 심창민은 지금 벌을 받는 거다. 손이 벌벌 떨리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쏟아내리려는 눈물을 애써 참는다. 하지만 몇 방울씩 빠져나온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내가 주저앉은 바닥을 조금씩 적신다. 내 눈물이 떨어진 자리 바로 앞에 박유천의 피가 흘려져있었다. 아픈 박유천. 심창민 때문에 아파하는 박유천. 손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나를 바라보던 박유천의 시선이 떠올랐다. 애써 눈물을 참던 박유천의 안쓰러운 얼굴. 조금씩, 조금씩 얼굴을 타고 눈물이 계속 흘렀다.


 “…미안해. 미안해. 유천아."


 이렇게 못된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제발… 아프지는 마. 이미 나 때문에 아픈 박유천을 위해 나는 때늦은 기도를 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지만 누군가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내는 것 같이 아팠다. 결국 터져버리고만 눈물. 꺽- 꺽- 소리를 내며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울었다. 저 멀리서 정윤호가 나를 발견하고 뛰어올 때까지, 그리고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미안하다며 나를 꽉 껴안고도 한참을 울었다.



 *


 밤새 울었다. 미련하고 못난 나를 탓하며, 나 때문에 아팠을 박유천을 생각하며 밤새 울었다. 울다 지쳐 잠이 들었었는지, 눈을 떠보니 아침이였다. 눈이 퉁퉁 부어 눈을 뜨는게 버거웠다. 혹시나 박유천에게 연락이 왔을까하는 작은 희망으로 머리 맡에 놓아둔 휴대폰을 열어보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거였지만, 다시 가슴이 아파왔다. 휴대폰을 닫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당겼다.

 박유천이 병원에 갔을까? 피투성이가 된 박유천의 손이 떠올랐다. 그리고 코 끝을 찌르던 강렬한 혈향. 벽에 자신의 손을 내려칠 때부터 박유천이 뒤돌아 걸어나갈 때까지 모든 것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 호되게 무서운 악몽이였다면 차라리 낫겠다.

 휴대폰을 열었다. ㅇ…ㅠ…ㅊ…ㅓ…ㄴ…ㅇ…ㅏ. 박유천의 이름을 쓰는 것 조차 버거웠다. 한 자 한 자 천천히, 아니 사실은 무척이나 망설이면서 키판을 누른다. 고작 '유천아' 세 글자를 적었을 뿐인데 눈물이 핑 돌았다.

 결국, 나는 휴대폰을 다시 닫고 말았다. 문자 메세지를 보내는 건 무리다. 차라리 전화가 낫겠지 싶어 휴대폰을 다시 열었다. 하도 많이 눌러 손 끝이 저절로 외워버린 박유천의 번호를 눌렀다. 화면에 뜨는 박유천의 11자리의 전화 번호. '통화' 버튼 위에 손을 갖다댔지만 이번에도 차마 누를 수가 없었다. 전화를 하면 박유천이 받을까?

 마른 침을 삼키고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박유천이 전화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박유천이 전화를 받지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공존하는 내 마음이다. 휴대폰을 귀에 갖다대자 익숙한 컬러링이 들린다.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넌 장난이라해도.」


 제대로 신경 써서 들어본 적이 없는 박유천의 컬러링. 그 수많은 날을 지나서 이제야 제대로 들어보는 박유천의 컬러링. 애써 참았던 눈물이 다시 주르륵 흘렀다. 나를 좋아해온 박유천이 수 십, 아니 수 백번 넘게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 어쩌면 내가 알아주길 바랬던 말.


 「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 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아.」


 듣는 내내 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 컬러링이 다 끝났지만, 박유천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자 컬러링은 나오지않고,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합니다.


 “……."


 박유천이 나를 피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어제 있었던 그 모든 일을 되돌리고 싶었다. 아니, 박유천과 내가 처음 만난 날. 아니, 그냥 내가 이 집에 처음 오던 날부터 다시 돌리고 싶었다. 우리는 정말로, 만나면 안되는 사이일지도 모른다.

 …안다. 지금 내가 애써 피하려고 하는 걸. 모든 게 다 내 잘못이면서, 나는 피하고 싶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현실 도피. 심창민의 고질병. 상처 받기 싫어서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못된 습관.

 휴대폰을 손에 꼭 쥐었다. 눈을 다시 감았다. 눈을 감으면 어제 박유천의 피투성이 된 손이 떠올랐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래도 애써 눈을 감는다. 내가 견뎌야 할 현실. 박유천은 심창민을 좋아했다. 하지만 심창민은 그런 박유천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박유천은 심창민 때문에 다쳤고, 아프다. 심창민도 아프다. 결국엔 우리 모두 …아프다.


 “창민아! 본가에 밥 먹으러 오렴."


 밖에서 새엄마가 밥을 먹으러 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을 걷고, 잠긴 목으로 생각 없다 말하자 새엄마가 걱정이 되는 듯이 무슨 일이 있냐며, 괜찮냐며 묻는다. 나는 애써 웃는 목소리를 냈다. 괜찮아요, 그냥 잠 좀 더 잘게요. 새엄마는 알겠다는 표시로 방문을 두어번 두드리고는 본가로 올라갔다. 집 현관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본가에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윤호를 보며 웃으면서 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박유천을 봐야할지도 몰랐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에 넣어둔 MP3를 꺼내왔다. 전원을 켜고, 이어폰을 귀에 끼웠다. 침대에 눕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

 재생 목록에서 '좋은 사람'을 찾아서 틀었다. 한곡 반복으로 바꿔놓았다. 발랄하다 못해 경쾌하기까지한 음악과 함께 보컬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는 눈물이 났다. 혹시나 누군가가 내가 우는 소리를 들을까봐 입을 막고 울었다.



 *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에 나는 눈을 뜨자마자 씻고 바로 학교에 왔다. 새엄마에게 주번이라 빨리 가야한다며 거짓말을 하고 밥도 먹지않은 채로 말이다. 주말 내내 나는 집에 틀어박혀있었다. 이제는 내가 주말에 맥스의 밥을 챙겨줄 필요도 없었고, 집에 새엄마도 계시니 본가에 밥을 먹으러 갈 일도 없었다. 굳이 나갈 필요가 없었기도 했지만, 박유천과 정윤호를 볼 자신이 없었기도 했다.

 주말 동안 역시나 박유천에게서는 연락이 한 통도 없었다. 정윤호에게서 간간히 문자 메세지가 오기는 왔지만,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정윤호에게 답장을 하지않는 것이 정윤호에게도, 박유천에게도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


 아직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않는 이른 시각. 김준수가 우리 반 문 앞에 서있었다. 저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우리반 앞에 서있는 것을 알아채긴했지만, 그게 김준수일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김준수는 내가 다가오자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키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주머니에 손을 꼽은 채로.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야."


 나는 애써 담담한 척을 하면서 김준수에게 말을 걸었다. 김준수가 이렇게 아침 일찍 나를 찾아온 이유는 안봐도 비디오다. 다 박유천 때문이겠지. 김준수와 박유천은 죽고 못사는 불알 친구니까.


 “……."
 “심창민, 넌 멀쩡하다?"


 김준수가 나를 보며 비아냥거리듯 말을 한다. 김준수의 얼굴을 보기가 싫어서, 아니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 김준수의 얼굴 위로 박유천의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는 나에게 김준수가 화를 억누르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너 정말 나쁜 새끼야. 알고 있지?"
 “……."


 창민아. 박유천, 손 2달 동안 병원 다니면서 치료해야한다고 하더라. 근육 같은건 다치지는 않았는데 흉터는 남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 괜찮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어제 정윤호가 보냈던 문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함께 떠오르는 피투성이가 됬던 박유천의 손. 바닥을 적신 박유천의 피.


 “……."
 “알고 있냐고!!!"
 “……."
 “…몰라? 어?"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 김준수. 김준수의 목소리가 온 복도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나는 박유천을 다치게 했고, 박유천에게 상처를 주었다. 박유천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다쳤다. 그 모든게 다 나 때문이었다. 김준수가 저렇게 화낼 만도 했다. 머리가 아파왔다. 김준수가 내 양 팔을 꽉 붙잡았다.


 “…김준수, 아파."
 “심창민, 넌 네가 아픈거만 알지? 박유천이 아픈건 모르지? 어?"
 “……."
 “…모른척하면 다 되는 줄 알았어?"


 김준수가 내 팔을 움켜잡은 손을 떨궜다. 저 멀리서 타닥타닥하며 바쁜 발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뒤로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한 손에는 붕대를 칭칭 감은채로 달려오는, …박유천.

 달려오는 박유천을 향해 김준수는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병신 새끼. 내가 들리도록 크게 중얼거리는 김준수를 돌아봤다. 김준수는 잔뜩 짜증난 표정으로 박유천을 노려봤다. 박유천은 달려오던 속도를 줄이고, 걸어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박유천이 김준수와 나의 옆으로 다가왔다. 숨이 가쁜지 작게 헐떡이는데 애써 참는 모습이 역력하다. 박유천은 나에게 시선조차 두지않는다.


 “…김준수."
 “네가 아침부터 왠일이냐. 박유천."
 “…가자."
 “야, 박유ㅊ…."
 “…그만해. 김준수."


 박유천이 나지막히 말을 한다. 박유천에게 말을 하려고 입을 열던 김준수가 박유천의 말에 입을 다시 다문다. 고개를 숙이자 박유천의 손이 보인다. 붕대를 칭칭 감은 박유천의 손. 깁스를 했는 것 같다. 팔꿈치까지 단단하게 감아놓은 붕대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어제 피투성이가 되었던 박유천의 손도.


 “그만해, 김준수."
 “……."
 “이제 더 이상 신경 안써."


 박유천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한다. 하지만 박유천의 말은 바늘이 되어 내 심장을 찔렀다. 그 순간 김준수도, 박유천도 그리고 나도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박유천이 김준수의 팔을 잡아당긴다. 김준수는 박유천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힘을 주지만, 박유천이 여러번 잡아당기자 결국 져주는 듯 끌려간다. 김준수는 뒤를 한번 돌아보지만, 박유천은 결코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박유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터져나왔다. 쓰러지듯 벽에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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