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게 고함 8 by 개꽃

8. 날 좋아하나요?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정윤호는 매표소에 가서 춘천행 버스 티켓을 두 장 끊었다. 수업이 일찍 마치고, 거기다 택시를 타고 이 곳에 온 터라 이제 막 5시가 지났다. 정윤호는 가장 빠른 차를 끊었다며, 곧 출발하는 차라서 아마 6시 조금 넘어서 춘천에 도착할 거라고 말했다.

 사모님은 돌아가신 후에 고향이였던 춘천에 묻히셨다. 사모님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 근처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강에 사모님의 뼛가루를 뿌렸다. 사모님이 어린 시절 자주 놀았던 강가라고 했다. 나는 매년 사모님의 기일이 되면 윤주와 함께 춘천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둘이 함께 강가에 가서 사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왔다.


 “뭐 좀 먹을래?”


 티켓을 끊어온 정윤호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입맛도 없는데다가 사실 나는 박유천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나는 박유천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정윤호와 이 곳에 와버렸다. 사실 박유천이 이런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이기심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정윤호를 혼자 보낼 수가 없다. 정윤호에게 사모님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정윤호를 그 곳에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박유천에게 전화라도 걸어야겠다는 마음에 공중 전화를 찾아 수화기를 들었다. 동전을 넣고 번호를 누르면 박유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나는 차마 번호를 누를 수가 없었다. 땡그랑,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동전이 반환되어 나오기를 여러 차례. 결국 나는 전화를 박유천에게 걸지 못하고 수화기를 내려놓고 말았다.


 “…창민아.”
 “…응?”
 “신경 쓰이면… 유천이한테 가봐. 난 괜찮으니깐.”


 수화기를 내려놓고 정윤호가 있는 곳으로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오는 내 모습이 신경 쓰였는지 정윤호가 옆으로 다가온 나에게 집에 가보라고 했다. 아니야, 괜찮아.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보다 더 힘이 없어 보이는 정윤호를 두고, 박유천에게 갈 수 없었다.


 “차 떠나겠다. 빨리 타러 가자.”


 정윤호가 미안해 할까봐, 괜찮은 척 정윤호의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걱정 하지마, 나 괜찮아. 얼굴이 잔뜩 굳어버린 정윤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박유천에게는 정말이지 미안한 일이지만, 정윤호를 혼자 둘 수가 없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 마냥 그저 안쓰러워 보이는 정윤호인데….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정윤호는 엄마 없이도 아주 잘 자랐다. 누가 봐도 멋있고 든든한 남자로 자랐다. 하지만 잘 자란 것처럼 보이는 열 아홉의 정윤호는 사실 상처를 가슴 속에 꽁꽁 감추고 지낸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고 떠들고 지내지만 엄마를 잃은 열 살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정윤호를 상처를 안다. 그렇기에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 위로해주고 싶다. 괜찮다, 괜찮아. 윤호야, 괜찮아. 이렇게.


 “조금 자둬. 피곤하지?”


 차를 타자 잠시 후 바로 차가 출발했다. 마음이 탁 놓이면서 온 몸에 긴장이 풀렸다. 이제 더 이상 박유천에게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동시에 온 몸의 긴장을 풀리게 했다. 긴장이 풀리자 조금씩 졸음이 밀려왔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게 눈꺼풀이라더니 안자려고 하는데도 도저히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꾸벅꾸벅 앞으로 떨구며 졸고 있는데 정윤호가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무거울텐데…. 미안함에 반 쯤 감은 눈으로 실실 웃으며 농담을 던지자 정윤호가 웃으면서 얼굴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올려준다. 부드러운 정윤호의 손길에 다시 눈이 스르르 감겼다. 아마 좋은 꿈을 꿀 것 같다.





 “엄마, 나 왔어요.”
 “사모님, 저도 왔어요. 저 창민이예요.”


 조용하고 한적한 강가에 정윤호와 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해가 길어진 탓에 여섯 시가 넘은 시각에도 주위는 환했다. 일년 만에 다시 온 강은 여전했다. 일년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고요하고 조용한 그리고 잔잔한 강. 마치 사모님의 예전 모습 같았다. 창민아. 우리 예쁜 창민이. 조용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던 사모님의 아름다운 미소가 생각이 났다. 철 없던 어릴 적, 사모님이 정말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때 그 아름다운 사모님의 모습이 생각났다.


 “엄마, 9년만이예요.”


 정윤호와 강가에 나란히 섰다. 이곳에 오기 전에 작은 구멍 가게에 들러 소주와 종이컵을 샀다. 정윤호는 쪼그려앉은 채로 소주병을 땄다. 그리고는 작은 종이컵에 소주를 부었다. 조심스럽게 강에 소주를 뿌렸다. 정윤호는 소주를 뿌리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여기가 엄마 고향이죠? 여기 되게 좋다. 조용하고 공기도 좋고. 나도 학교 졸업하고 그냥 여기 와서 살까? 엄마랑 같이?”
 “…….”
 “엄마, 늦어서 미안해. 조금 더 빨리 왔어야했는데….”


 내가 정윤호에게 서울에서부터 조심스럽게 가져온 하얀 국화꽃을 건내주었다. 정윤호가 국화꽃 한 송이씩 뽑아서 강 위로 조심스럽게 던졌다. 잔잔한 물살을 따라 국화꽃이 천천히 쓸려 내려갔다. 쓸려 내려가는 국화꽃을 한참 동안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윤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은 무서웠어, 엄마.”


 여기에 오면 엄마가 죽었다는 걸 정말로 알게 될까봐. 정윤호가 쓴 웃음을 지었다.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나는 애처러운 정윤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윤호의 손에 마지막 국화꽃 한 송이가 남았다. 정윤호가 마지막 국화꽃을 강물 위에 천천히 뿌렸다.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사모님의 장례도 보지 못한 채, 회장님의 명으로 정윤호는 곧바로 유학을 가버렸다. 정윤호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를 받지 않게 하려는 회장님의 배려였을지도 모르지만, 어린 정윤호에게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과 갑작스러운 유학은 상처였고, 고통이였을 것이다.

 불미스러운 일로 마음의 상처을 받고 세상을 떠난 엄마의 죽음을 열 살 어린 정윤호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정윤호가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정윤호의 곁에서 정윤호를 돌봐준 집사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정윤호는 유학을 가고 한참동안 힘들어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닥친 갑작스러운 일들을 견뎌내기엔 정윤호는 너무 어렸고, 연약했다.

 정윤호는 9년동안 사모님의 죽음을 애써 외면했을 것이다. 그렇게 여겨온 것들이 자신의 눈 앞에 드러나는 순간 느낄 정윤호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한 장본인이나 다름없는 지금의 사모님과 얼굴 맞대고 살아야하는 정윤호는 어떠한 기분일까.


 “보고싶어…. 엄마… 엄마….”


 멍하니 서있던 정윤호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였다. 그렇게 강인하고 든든하던 정윤호가 울고 말았다. 엄마를 잃고도 울 수 없었던 약하디 약했던 열 살의 소년은 열 아홉 살이 되어서야 그녀의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작게 떨리는 정윤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울지마, 윤호야…. 괜찮아….”
 “엄마… 엄마… 엄마….”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단단하고 강인하게 보였던 정윤호가 아이처럼 눈물을 흘린다. 나는 그의 어깨를 감싸 안고 위로를 해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애처로운 그의 어깨에는 나의 한숨이 스며들어갔고, 천천히 흐르는 강물에는 그의 눈물이 스며들었다.



 *


 춘천 터미널 근처에 다행히 24시간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했다. 정윤호는 터미널에 표를 사러 들어갔고 나는 계산을 하고 배터리를 끼웠다. 사실 휴대폰을 켜는 것이 두려웠다. 휴대폰의 전원을 켜면 박유천이 나에게 보낸 문자와 음성들이 뜰 것이다. 보고 싶지않았다. 보고 싶지 않지만, 무섭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책임져야할 것들이다. 내가 정윤호와 함께 춘천으로 왔기에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다.

 편의점을 나서면서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전원이 완전히 켜지고 여러 통의 문자가 한꺼번에 날아왔다. 그리고 전원이 꺼졌을 때 전화가 왔었다고 알려주는 메시지가 수십 통이 날아왔다. 발신자는 모두 박유천이었다.


 「심창. 집이지? 나 이제 곧 마친다. 조금만 기다려라.」
 「폰 왜 꺼놨냐? 나 이제 집에 가는 길이다. 준비하고 있어.」
 「너 어디냐? 왜 집에 없어? TV도 켜놓고 어디간거야? 폰은 왜 꺼놨어?」


 박유천이 보낸 문자 메세지 하나 하나에 담겨있는 박유천의 초조한 마음들이 느껴졌다.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메세지 함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이 보냈다. 입 안이 바싹 마르는게 느껴졌다. 음성 메세지를 들으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첫번째 메시지입니다. 심창! 너 어디에 있어? 왜 집에 없어? 나 지금 집에 왔단 말이야. 너 어디야? 잠깐 나간거면 말이라도 하고 나가지!]
 [세번째 메시지입니다. 심창민. 너 진짜 어디냐? 약속 잊었어? 약속 시간 다 되가잖아!]
 [다섯번째 메시지입니다. 너, 무슨 일 있는 거냐? 혹시 무슨 일 있어? 다친거냐? 어? 하….]


 음성을 많이도 남겨놨다. 여덟 개의 음성 중 다섯 번째 음성을 듣는데 끝에 박유천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렸다. 내가 혹시 다쳐서 연락을 못하는 것인 줄 알고 그러는 것 같은데, 정말 미안했다. 정말로 많이. 사실은 내가 자신의 약속을 깨버리고 정윤호와 함께 있는 건데….

 마지막 메세지가 남았다. 그 메세지 이후로는 박유천은 문자 메세지도 전화도 하지않았다. 손이 저절로 떨렸다. 듣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또 통화 버튼을 눌렀다. 긴 한숨 소리와 말을 잇는 박유천.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여덟번째 메시지입니다. 하아…. 심창민…. 너… 정윤호랑 같이 있니.]


 가라앉은 박유천의 목소리. 미묘하게 떨리는 박유천의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허탈한 듯 웃어버리는 박유천. 그리고 뚝 끊기는 음성. 눈물이 날 것같았다. 잘못은 내가 했는데, 내가 잘못한거 다 아는데 너무 슬펐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요새 들어 자꾸 박유천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서…. 나 따위가 박유천에게 자꾸 상처를 주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미안했다.


 “창민아?”


 휴대폰을 들고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는데 정윤호가 다가왔다. 정윤호는 갑자기 나빠진 내 안색을 보고 놀란 기색이다. 괜찮아? 내 어깨 위에 살며시 손을 얹고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눈이 쭉 찢어진 주제에 동그랗게 뜨고 괜찮냐고 묻는 정윤호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눈은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입은 웃음이 났다.


 “괜찮아.”
 “얼굴은 전혀 안괜찮아 보이는데? 괜히 오자고 그런거 아닌지 모르겠다. 어디 아퍼?”
 “괜찮다니깐. 빨리 가자. 서울 도착하면 늦겠다.”


 괜찮다는 내 말을 들었음에도 정윤호는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내가 팔을 잡아당기는데도 정윤호가 무언가를 하고 싶은지 머뭇거렸다. 왜? 내가 정윤호를 쳐다보자 정윤호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자신의 품으로 나를 끌어안았다.

 정윤호가 깍지 낀 손으로 내 등을 끌어안았다. 두번째 포옹. 첫번째 포옹처럼 갑작스럽게 안긴 탓에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내 두 손이 허공에 붕 떴다. 하지만 곧 나도 천천히 깍지를 끼고 정윤호의 등을 끌어안았다.


 “정윤호….”
 “고마워, 창민아….”
 “…….”
 “…함께 와줘서, 내 곁에 있어줘서,”
 “…정윤호….”
 “항상 고맙고,”
 “……”


 정윤호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자신의 깍지 낀 양 손에 힘을 주었다. 자연스럽게 내 몸이 정윤호와 더욱 더 밀착되었다. 정윤호의 옷에서 시원한 옅은 향수 향기가 났다. 정윤호의 약간 고르지 못한 숨소리가 들렸다. 정윤호의 작은 속삭임 때문에 참았던 눈물이 다시 흐를려고 했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사랑해. 사랑해, 창민아.”



 *


 “피곤하지?”
 “아니, 괜찮아. 정윤호 네가 더 피곤하지않아?”
 “응?”
 “아까 울…. 읍!”


 아까 울었잖아, 라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정윤호의 손이 순식간에 내 입을 틀어막았다. 내 앞에서 울었다는 것이 부끄러운 건지 아니면 울었다는 그 자체가 부끄러운 건지 내가 은근슬쩍 놀리자 정윤호의 얼굴이 빨개졌다.

 집으로 올라가는 골목을 정윤호와 함께 천천히 걸었다. 사실 몸도 마음도 몹시 피곤하다. 춘천에 다녀왔다는 것도 피곤하지만, 박유천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내가 그 것에 대해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런가, 마음이 너무 피곤하다. 얼른 가서 쉬고 싶다. 박유천, 정윤호 모두를 잠시 잊고 그냥 잠을 자고 싶다.


 “빨리 들어가자. 피곤하다.”
 “그래…. 창민아, 너무 고마워, 오늘.”


 오늘 도대체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건지. 정윤호는 또 고맙다고 말하면서 웃는다. 문득 아까 정윤호가 나를 안고 사랑한다고 말한 것이 생각이 났다. 정윤호는 너무 따뜻한 사람이다. 뭐랄까, 정윤호의 따스함이 눈물겹도록 행복하고 좋다. 하지만 정윤호를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다. . 딱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라는 것은 없다.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무언가 있다. 그런데 나는 그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심창민….”


 익숙한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입술과 입 안이 바싹 말라왔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꽉 쥐고 말았다. 여느 때처럼 담벼락에 몸을 기댄 박유천의 실루엣이 가로등 불빛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내 앞에 서있던 정윤호가 알 수없는 눈빛으로 나를 돌아봤다.


 “…어디 갔다가 이제 와.”


 박유천이 담벼락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윤호는 한 걸음을 뒤로 물러서 내 옆에 나란히 섰다. 박유천이 그런 정윤호를 한번 노려보더니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렇게 가까이 서있지는 않고 조금 떨어져있는 위치에서 올려다보는 박유천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다. 박유천의 주위에서 냉기가 흘렀다.


 “…박유천.”
 “내가 오늘 약속… 꼭 지키라고 했잖아.”


 잔뜩 굳어버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박유천의 얼굴은 무서움을 느낄 정도로 차가웠다. 처음 보는 검은색 수트를 입고 있는 박유천의 모습이 달라보였다. 억지로 겨우겨우 화를 억누르고 있는 듯한 박유천의 모습에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결국 누르고 있던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박유천이 성큼성큼 걸어와 내 손목을 움켜잡았다.


 “아…!”


 어찌나 세게 움켜잡는지 손목이 부러질 것 같았다. 팔을 비틀며 빼려고 했지만 빼려고 할수록 박유천은 오히려 더 세게 잡았다. 평소의 박유천이 아니였다. 박유천이 내 팔을 끌고 골목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자 정윤호가 박유천의 어깨를 다급히 잡았다.


 “박유천! 이러지마!”
 “꺼져.”


 박유천이 정윤호의 손을 세게 쳐냈다. 내쳐진 자신의 손을 쳐다보고 박유천의 얼굴을 쳐다보는 정윤호의 얼굴이 굳었다. 그래도 정윤호는 다시 내려가려는 박유천을 붙잡았다. 이대로 보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른다.


 “박유천! 흥분 가라앉히고 좀 진정해! 이성적으로 생각해!”
 “씨발! 형인척하지마. 역겨워.”


 박유천이 소리를 지르며 정윤호의 팔을 걷어냈다. 정윤호를 노려보는 박유천의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박유천의 화가 도를 넘은 것 같았다. 박유천이 움켜잡은 팔부터 아려와 심장까지 아파왔다. 박유천이 남은 한 손으로 정윤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정윤호, 형인척 하지말랬지. 역겹다고. 씨발.”
 “…박유천.”
 “내 이름 부르지마. 씨발!”
 “…이거 놓고 이야기해.”


 멱살을 잡혀도 담담한 정윤호의 말에 박유천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멱살을 풀었다. 정윤호가 멱살 잡혀 삐뚤어진 타이를 바로 고쳤다. 그리고는 박유천을 쳐다봤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정윤호는 이성적이다. 정윤호는 박유천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창민이 손 놔.”
 “신경 쓰지마.”


 박유천이 나를 끌고 골목 아래로 내려갔다. 뒤에서 정윤호가 박유천을 부르며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박유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끌고 골목길을 내려왔다. 그렇게 길지도 않은 골목길인데 천년같이 길었다. 골목 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복잡하고 미로 같은 골목. 정윤호가 따라오다 길을 잃은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뒤에서 정윤호의 기척이 느껴지지않자, 박유천이 속도를 늦추고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
 “…….”


 그 짧은 거리를 달려오는데도 숨이 차 헐떡대는 나에 비해 박유천은 굳은 얼굴로 내 팔을 잡고 있었다. 내가 팔을 흔들어 빼내려고 하자 그제야 손을 풀어준다. 박유천이 움켜잡은 부분이 벌겋게 부어있었다. 박유천을 쳐다봤다. 박유천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정윤호랑 지금까지 같이 있었어?”
 “…….”
 “대답해!”
 “…….”
 “대답하라고! 씨발!”


 박유천이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나는 차마 박유천에게 정윤호와 함께 있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구겨진 박유천의 수트. 마음이 아프고 자꾸 눈이 갔다. 타이 부분이 잔뜩 구겨져있었다.


 “정윤호랑 있었구나….”
 “…….”
 “씨발!”


 내가 자신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자 화가 끝까지 난 박유천이 담벼락에 그대로 자신의 주먹을 내리꽂았다. 말릴 새도 없었다. 돌로 만든 담벼락에 주먹질을 했으니 손이 남아날 리가 없다. 뼈가 부러졌을 지도 모른다. 박유천의 손이 찢어졌는지 피가 튀겨 옷에 묻었다. 박유천! 깜짝 놀란 내가 소리를 지르자 박유천이 나를 쳐다봤다.


 “씨발. 존나 구차하다.”
 “…유천아. 손…. 피….”
 “넌… 이렇게 해야 나를 봐주니.”


 박유천의 손을 뒤덮고 있는 붉은 액체에 놀란 내가 아무런 말을 못하고 있자, 박유천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러더니 뒤를 돌아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박유천! 내가 소리를 지르는데도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았다.


 “박유천!”


 박유천의 뒤를 쫒아가서 잡았다. 박유천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내리고 있었다. 내가 신고 있는 스니커즈의 코에 박유천의 손에서 떨어지는 피가 묻었다. 박유천의 다치지않은 팔을 잡았다. 입술이 떨리고 손이 떨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겨우 입을 열어 그동안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알고 있었지만 눈치 채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너…, 나 좋아하니?”


 매일 아침 지각을 겨우 면하면서도 나와 같이 가는 것도, 점심 시간에도 밥을 함께 먹는 것도, 나완 상관없는 너의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무조건 함께 하자고 하는 것도, 정윤호와 키스하는 나를 보고 네가 불 같이 화낸 것도,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넌 장난이라해도.」


 화장실 앞에 몰래 크림빵과 바나나 우유를 갖다 놓은 것도, 싫다는 스티커 사진을 찍어서 일부러 휴대폰 뒤에 붙여놓은 것도, 9년동안 기도했다는 것도,


 「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 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아.」


 그리고 이 노래도,


 “너…, 나 좋아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였다. 박유천이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나에게 이야기 했던 그 날, 9년동안 한가지를 위해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한 날, 그 날 알게 되었다. 나는 바보였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다 아는 척, 똑똑한 척을 했다. 박유천의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이 마음이 아팠다. 나는 박유천의 마음을 알면서도 박유천을 외면했다. 그것이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나는 박유천을 외면했다.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내 손을 떼어내며 박유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럼 박유천은 또 착각을 하겠지? 심창민이 자신에게 잘 대해주니까. ‘혹시’라는 마음이 생기겠지. 그러면서 박유천은 여전히 심창민을 좋아할 거야. 왜냐면 희망이 있잖아. 심창민이 자신을 좋아할 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러다가 또 박유천은 상처를 받겠지. 심창민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게 희망고문이야.

 나에게 예를 들어 설명하던 준수의 말이 떠올랐다. 모든걸 다 눈치채놓고는 박유천에게 희망을 주는 척하면서 그의 사랑을 잔인하게 밟아버린 심창민. 가장 나쁜 놈.


 “너, 존나 싫어….”


 유천아…. 미안….



 -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