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게 고함 5 by 개꽃

5. 폭풍 전야는 고요한 법





 박유천은 지난 이주 동안의 냉전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나를 대했다. 따로 그렇게 약속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박유천과 나 사이에서 지난 이주간의 일들은 무언(無言)의 금기가 되어버렸다. 박유천이 나에게 사과를 한 다음날 아침, 이주 전의 어느 아침처럼 박유천은 헐레벌떡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다. 이제 좀 철이 드나 싶더니 다시 돌아왔네. 허겁지겁 밥을 먹는 박유천을 지켜보던 윤주는 혀를 끌끌 찼고 나는 웃었다. 그리고 정윤호는 무표정했다.

 박유천과 내가 냉전 중이었던 그 이주 동안 나는 신경을 쓰지 못했지만 아버지와 송씨 아줌마, 아니 새엄마의 결혼 준비는 지체없이 착착 준비되어갔다. 새엄마도 혈육이 없는 분이시고 아버지도 초대할 친척이 없어서 두 분의 합의로 결혼식은 생략하기로 하고 간단하게 가족끼리 식사를 하기로 했다. 물론, 본가의 식구들도 함께.

 저녁 식사를 다같이 함께 하기로 한 날이 며칠 뒤였다. 사모님의 호출로 박유천과 함께 학교를 마치고 시내 근처로 나갔다. 토요일은 일찍 마치는 날이라 시내 근처에도 사람이 많았다. 약속 장소인 유명한 디자이너의 샵에 들어가자 이미 사모님은 그 곳에 계셨다. 샵에서 일하는 누나들이 내 손에 쥐어주는 수트를 입었다. 뭐, 수트를 입는 것까지는 좋았다. 소매에 달려있던 가격표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나도 기분이 좋았다. 몸 사이즈에 맞춘 듯한 딱 맞는 핏의 수트를 입으니 새삼 내가 잘생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차마 말은 할 수 없었지만.) 문득 소매 부분에 덜렁덜렁 달려있는 가격표가 눈에 띄었다. 도대체 이런 건 얼마나 하는 거지? 하는 궁금증고 함께 가격표를 확인하는데….

 가격표를 보자마자 나는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이런 옷은 내가 입을 옷이 아니다. 가격표에 적혀있는 ‘0’의 개수. 나는 내가 숫자를 잘못 센 줄 알았다. 수트 자켓을 벗어 옆에 서있던 누나에게 돌려주자 의아한 표정의 사모님이 나에게 왜 그러냐면서 묻는다.


 “어머, 창민아. 마음에 안드니? 다른 옷 입어볼래?”
 “아, 아니요. 괜찮아요.”
 “나는 그 옷이 참 너한테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안그래요, 미스 박?”
 “맞아요. 정말 잘 어울려요.”


 옆에 서있던 누나가 호들갑을 떨면서 사모님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사실 그런 말들이 다 입에 발린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막상 들으면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가격의 옷은 솔직히 나에게 사치다. 그리고 나는 아직 학생인데 이런 옷을 입을 일이 없는데 사는 것도 그렇고.

 나는 내 주제를 잘 안다. 운전수를 하는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이런 옷은 사치이다. 그리고 나도 이런 옷은 필요하지 않다. 물론 박유천은 이런 옷을 서슴없이 살 수 있겠지만, 나는 다르다. 박유천의 아버지는 큰 회사 회장님이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 회장님의 운전수다. 우린 격이 달랐다.


 “이번에 식사할 때 멋지게 입고 가면 심기사랑 미스 송이 좋아할 거야.”
 “…….”
 “미스 송이 결혼한다는데 내가 더 많이 못해줘서 미안하지. 내 마음이니까 그냥 받고 입어. 멋지다, 우리 창민이. 잘 어울려.” 


 사모님이 누나가 들고 있던 수트 자켓을 직접 나에게 다시 돌려준다. 좀 찝찝한 구석이 있긴하지만 그래도 너무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서 자켓을 돌려받았다. 뭐… 솔직히 잘 어울리긴하네. 거울로 보이는 내 모습이 다른 사람 같았다. 패션쇼에서 워킹하는 모델 같다고나 할까? 내 스스로가 멋져보이자 괜히 으쓱해져서 계속 거울을 힐끔 힐끔 보는데 마침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던 박유천이 문을 열고 나왔다.


 “…….”
 “어머….”
 “와….”


 샵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려왔다. 심플한 검은색 수트에 흰 와이셔츠를 입었는데도 빛이 나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갑갑한 것을 싫어하는 박유천이 목이 조이는지 타이를 느슨하게 푸는 동안에도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어머. 꺅. 섹시하다. 잘생겼다. 우와, 진짜 좀 짱이다. 샵에 있던 다른 손님들도 박유천을 보면서 다들 한마디 씩 했다.


 “아… 갑갑해.”


 타이를 느슨하게 풀던 박유천이 고개를 들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아래 위로 한번 쓱 훏어보더니 박유천이 한마디 내뱉는다. 뭐, 꽤 어울리네. 괜히 머쓱해져서 나도 박유천에게 칭찬을 했다.


 “너도 꽤 잘 어울려.”
 “알아.”


 아오, 저 재수탱이. 누누이 말하지만 사실 뭐 평소에도 별로지만, 자기 자신이 잘난 것을 너-무 잘 아는 박유천은 솔직히 재수없다. 내 표정이 서서히 굳어지는 것을 보면서 박유천이 낄낄 웃었다. 박유천이 낄낄 웃는데도 여기저기서 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웃는 모습도 어쩜 저렇게 멋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아들을 보고 감탄하자 사모님이 기분이 좋아지셨는 것 같다. 사모님이 박유천과 나의 수트 이외에 평상복으로 입을 옷들을 이것 저것 더 사셨다. 사실, 평상복인데 굳이 샵에서 만든 비싼 옷을 사야하는 건 이해할 수 없지만, 어차피 내 돈도 아니니 뭐…. 사모님이 헤어 샵에 들리셔야한다고 해서 샵에서 나와 박유천은 양 손에 사모님이 사주신 수트 케이스와 짐을 들고 집으로 가야했다. 사모님이 짐이 많다며 택시를 타고 가라고 따로 돈을 쥐어주셨다. 박유천과 큰 길가에 나와서 내가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박유천이 내 팔을 잡았다.


 “심창민, 집까지 걸어가자.”
 “뭐? 미쳤냐? 이 짐 다 들고 걸어가자고?”
 “별로 안걸려. 날씨도 좋은데 걸어가자.”
 “더운데….”


 걸어가기 싫은데 억지로 박유천에게 끌려서 걸어간다. 나는 더위를 잘 타는 체질이라 조금 걸었는데도 금새 등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벚꽃들이 만개한 돌담길을 따라 걸었다. 박유천이 나보다 한발짝 앞서 걸어갔다. 양 손에 짐을 들고 걸어가는 박유천의 뒷모습이 조금 쓸쓸해보였다. 걸음을 빨리해서 박유천의 옆에서 걷기 시작했다. 박유천은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나를 흘깃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샵이 번화가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조금 걸었는데도 금방 시내가 나왔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짐을 한가득 들고 지나가려니 조금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부딪히지않게 하기위해 낑낑거리며 걷는데 갑자기 박유천이 어떤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여고생들이 북적이는 스티커 사진 가게였다. 여긴 왜? 뭐 볼일 있어? 내 질문에 박유천이 갑자기 내 손을 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야, 야…. 여긴 왜?”
 “우리 사진 찍자.”
 “미쳤어? 남사스럽게 남자 둘이 왠 스티커 사진이야!”


 분홍빛이 가득한 알록달록한 스티커 사진 가게 안에 다 큰 남자 둘이 들어가니까 안에서 자신들의 스티커 사진을 꾸미던 여고생들이 신기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미칠 만큼 부끄러워서 다시 박유천을 끌고 가게 밖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박유천은 더 세게 내 손을 잡고 기계 하나를 선택하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 돈을 챙겨왔는지 동전을 넣고 기계를 작동시키더니 익숙한 손놀림으로 일본어로 되어있는 버튼들을 이것저것 눌렀다. 그러더니 나보고 빨리 포즈를 취하라며 재촉한다. 대체 얘가 왜 이러나 싶어서 박유천을 멀뚱히 쳐다보니까 자기 멋대로 내 손을 볼에 갖다댄다. 찰칵, 찰칵, 찰칵.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플래쉬가 터졌다. 나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겠는데 마지막 사진이라며 박유천이 내 얼굴과 자기 얼굴을 카메라에 가까이 들이댔다. 서로 얼굴이 부딪혀 얼굴이 잔뜩 눌린 상태인데 박유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찰칵. 플래쉬와 함께 서로 찐빵같이 눌린 얼굴이 찍혀버렸다.


 “…….”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순식간에 모든 일이 종료가 됬다. 갑자기 닥쳐버린 일들 때문에 벙쪄버린 나와는 다르게 박유천은 재빠르게 내 손을 잡고 밖에 나가서는 우리 사진이 뜬 기계 앞에 서서 이것저것을 눌렀다. 너도 꾸며. 내 손에 펜을 쥐어주고는 다시 꾸미는데 집중한다. 가게 안에 있던 많은 여고생들이 우리를 신기해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안 꾸며?”
 “…너나 해.”
 “…….”


 조금 당황스러웠을 뿐인데 내뱉은 말이 의도치 않게 화가 난 듯 차갑게 나왔다. 나도 의도치않은 억양에 당황했다. 내 말에 박유천은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행동을 멈추고 있던 박유천이 다시 기계를 바라보고는 펜으로 화면을 꾹꾹 눌렀다. 신나게 화면을 꾹꾹 누르던 방금 전과는 다르게 느려진 속도. 나는 그저 박유천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것저것 누르더니 어느새 다 했는지 펜을 제자리에 꽂아놓고는 사진이 출력되기만을 기다린다. 그동안 박유천은 아무 말이 없었다.


 “…….”


 뭐랄까. 냉전이 있고 난 후 박유천에게 나도 모르게 벽이 생겨버린 것 같다. 예전의 박유천이 아니라 조금 어려워진 박유천이랄까. 평소에는 괜찮은데 아주 가끔씩 박유천을 대하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이렇게 어색한 상황에는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 지조차 모르겠다.


 “이거.”
 “……."
 “……."


 출력된 스티커 사진을 잘라온 박유천이 내게 사진을 건냈다. 찐빵같이 찌그러진 박유천과 나의 얼굴이 화면 가득히 나온 마지막 컷이였다. 풉. 사진을 보자마자 저절로 웃음이 났다. 내 웃음에 박유천이 옆에서 괜히 한마디 던진다. 마치 자신은 아니라는 듯이. 너 완전 찐빵같다. 옆구리 터진 찐빵.


 “너도 뭐 그다지 멋있게 나오진 않았거든?”
 “난 뭘해도 멋진 것 같은데?”


 와, 저 재수탱이 진짜. 실실 쪼개는 박유천의 등을 한 대 때렸다. 유심이 박유천이 꾸며놓은 스티커 사진을 살펴봤다.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고 대충 꾸미긴 했는데 역시나 허접스럽다. 촌스럽기 그지없는 센스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한참을 살펴보는데 스티커 사진 밑부분에 작게 뭐라고 쓰여있었다. 일본어였다.


 “박유천, 이거 뭐야?"
 “어? 뭐?"


 「大好きだよ。」


 작은 글자로 작게 쓰여져있는 일본어. 난 일본어는 하나도 모른다. 제 2 외국어도 중국어를 선택해서 일본어는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었다. 박유천은 제 2 외국어를 일본어로 선택했기 때문에 일본어를 좀 아는 것 같았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박유천이 어깨를 들썩인다.


 “몰라."
 “이것도 몰라?"
 “아, 몰라. 그냥 있길래 찍은거야. 뜻은 몰라. 한자 섞여 있잖아."
 “쳇, 제 2 외국어 일본어 하면서 그것도 모르냐?"
 “헐. 심창민, 너 그러면 중국어 다 아냐?"


 나도 중국어는 잘 못한다. 외국어는 어렵다. 특히 중국어는 뭐 4성이 있고, 어쩌구 저쩌구…. 사실 중국어 시간만 되면 뒤에서 잠만 잤다. 어차피 우리는 수능만 잘치면 되니깐 제 2 외국어 내신은 신경 안쓴다. 그래서인지 학교 전교생 대부분 제 2 외국어를 잘 못한다.

 스티커 가게를 나가기 위해 짐을 챙기고 있었다. 옆에서 내가 찐빵 같이 나온 스티커 사진을 보며 한참을 웃던 박유천이 스티커 기계에 올려놓았던 스티커 사진과 내 휴대폰을 가지고 갔다. 그러더니 스티커를 휴대폰 배터리 부분에 붙여버린다. 이게 지금 무슨 퐝당한 시츄에이션?


 “우린 절친이니까.”
 “야!"
 “원래 베프끼리는 이런거 해."


 자신의 휴대폰 배터리 부분에도 스티커 사진을 붙이고는 혼자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방방 뛰어다닌다. 찐빵같이 나온 내 얼굴이 박유천의 휴대폰 뒷부분에 붙여졌다는 것이 상당히 불쾌했다. 박유천의 친구들이 혹시나 박유천의 휴대폰을 보다가 나의 저런 모습을 보게 된다면…? 으아악! 야! 박유천! 그거 당장 떼! 스티커를 떼기 위해서 박유천을 뒤따라갔다. 신이 난 박유천의 발걸음이 통통 튄다. 걸어가는게 아니라 마치 날아가는 것 같다.

 간간히 뒤를 돌아서 나를 쳐다보는  박유천의 모습이 아련하게 멀어진다. 박유천의 검은 흑발이 흩날리고 박유천이 활짝 미소를 짓는다. 햇빛이 유난히 따스한 날이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따라 심장이 쿵쿵 뛰어댄다.



 *


 우리집 식구들과 본가 식구들이 다 같이 모여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날이다. 형식적인 결혼식을 하기보다는 그냥 간소하게 가족끼리 식사를 하고 싶다는 아버지와 새엄마의 뜻에 따라 회장님 가족과 우리 가족이 정말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했다. 사모님이 사주신 수트를 입고 아버지 앞에 섰다. 멋있다,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아버지는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지으셨다. 사랑하는 여자와 사랑의 결실을 이루는 날, 아버지는 지금까지 나와 함께 지내 온 어느 때보다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사모님은 내 옆자리에 앉으셨다. 사모님의 향수 냄새가 너무 강해 머리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식사가 나오고 한창 먹고 있는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잠깐 일어나 밖으로 나갔따. 평소에도 쓰는 향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사모님의 향수 냄새가 신경에 거슬렸다.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옆에 놓여있던 종이 타올로 대충 물기를 닦아냈다. 이제야 조금 두통이 가라앉았다.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지압을 하며 거울을 쳐다보는데 내 뒤에 정윤호가 서있었다. 너무 놀라 자리에 주저앉을뻔 했다.


 “아! 놀래라…."
 “무슨 죄 지었어? 왜 그렇게 놀래."


 자리에 주저앉으려는 나를 놀란듯 손으로 잡아주는 정윤호다. 내가 민망한듯 웃자 정윤호도 씩 웃는다. 저승 사자 같이 서있으니까 놀래지! 내 말에 정윤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렇게 멋있는 저승 사자도 있냐?"


 어, 뭐지. 정윤호도 약간 자뻑의 길에 들어서는 것 같다. 장난스러운 내 눈흘김에 정윤호가 농담이라며 웃는다.  


 “오늘 멋있다. 창민아."


 나보다 더 멋진 수트를 입고, 훨씬 더 멋진 모습을 하고서 정윤호는 내게 멋있다며 칭찬을 했다. 네가 더 멋져. 내 말에 정윤호가 피식 웃는다. 삐죽삐죽 세운 정윤호의 머리. 평소에는 머리를 다 내렸었는데, 저런 머리도 참 잘 어울린다. 정윤호는 어찌나 깨끗이 닦았는지 윤이 나 반짝거리는 화장실 벽에 몸을 기댔다.


 “기분이 어때?”
 “무슨 기분?”
 “엄마가 생긴 기분.”


 아…. 나는 잊고 있었다. 엄마를 잃은 정윤호를 잊고 있었다. 게다가 그 원인이 사모님 때문이라는 것도. 그런데도 사모님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나에게 새로이 생긴 ‘엄마’라는 존재를 위해 축하를 하러 온 정윤호였다.

 내가 정윤호에게 오늘 모임에 참석할 수 있으면 꼭 와달라고 부탁했었다. 정윤호의 축하를 꼭 받고 싶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마음이 얼마나 경솔했는지 그때 나는 알 지 못했다. 엄마를 잃은 정윤호에게, 엄마를 얻게 된 심창민은 상처를 줬다.

 지나치게 담담하게 말하는 정윤호를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한 집에 산다지만 정윤호는 사모님을 불편하게 여겼다. 왠만하면 마주치고 싶어하지 않았고, 마주칠 일이 있어도 최대한 빨리 헤어졌다. 그렇게 지낸 정윤호에게 사모님과 함께 하는 식사라니. 아무리 다른 가족들이 있다고 해도 정윤호에게 그런 일은 힘든 일임이 분명했다.


 “…….”


 나의 경솔함에 아무 말도 하지못하고 고개를 숙인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정윤호가 웃으며 말했다. 창민아, 괜찮아. 나, 아무렇지도 않아. 정윤호가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난 이제 어린 정윤호가 아니니까.”
 “…미안, 정윤호.”
 “열 아홉살, 다 큰 정윤호는 이제 괜찮아. 네가 미안해할 필요 없어.”


 아무리 정윤호가 괜찮다고 하지만 정윤호가 전혀 괜찮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저 자리가 정윤호에게 얼마나 불편한 자리이고, 앉아있는 것이 얼마나 고역일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데도 나는 정윤호의 불편함을 생각조차 하지않았다.


 “불편…했지. 저 자리….”


 정윤호의 불편함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내 자신을 탓하며 조심스럽게 정윤호에게 물었다. 정윤호를 부르지않는 한이 있더라도 정윤호가 불편한 자리에 있게 하는게 아니였는데…. 나의 헛된 욕심이 정윤호를 힘들게 한게 아닐까.


 “너한테 중요한 자리인거 다 아는데… 그깟게 뭐가 대수겠어.”
 “…….”
 “내가 조금만 참으면 되는 일인데….”
 “…미안해.”
 “…너한테 중요한 일이면, 나한테도 중요한 일이야. 창민아.”


 정윤호가 나를 자신의 품으로 이끌었다. 내가 정윤호의 품 안에 안기는 꼴이 되었다. 당황해서 몸이 뻣뻣하게 굳은 것 같았다. 정윤호가 조심스럽게 내 허리를 감싸안았다. 몸이 뻣뻣해지면서 호흡이 멈췄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정윤호가 몸을 뗀다.


 “숨 쉬어, 창민아."
 “…후우."


 몸이 떨어지고 나서야 크게 숨을 내뱉었다. 정윤호가 그런 나를 보며 활짝 웃는다. 촌스럽게 정윤호가 한번 안은 것때문에 숨까지 못쉬다니, 심창민 촌스러워. 난 왜 이렇게 한심한지 모르겠다. 점점 찡그려지는 내 표정을 보던 정윤호가 무릎을 살짝 굽히고는 내 얼굴을 아래에서 올려다본다.


 “웃는 게 예쁜 심창민."
 “…어?"
 “웃어. 웃어야 예뻐."


 정윤호가 내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올린다. 올라가는 입꼬리. 봐, 훨씬 예쁘다. 활짝 웃는 정윤호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내 입꼬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낀 정윤호가 그제야 손을 놓는다. 어른들 기다리시겠다, 이제 가자. 정윤호가 빙긋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정윤호가 잡은건 내 손뿐이였지만, 그의 따스함이 온 몸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절로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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