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게 고함 4 by 개꽃

4. 알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의 연장선





 “…….”
 “…….”


 술집 앞에서 택시를 잡아 집으로 오는 내내, 박유천은 아무 말도 없었다. 박유천은 앞좌석에 앉아 집으로 가는 동안 한마디도 없이 창 밖만 내다봤다. 박유천이 먼저 앞좌석에 앉는 바람에 나와 정윤호는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택시 안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기류. 나는 계속 박유천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계속 박유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앉아있던 정윤호가 내 무릎에 머리를 얹고 자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정윤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윤호의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얄팍하고 유려한 입술선. 심장이 다시 두근두근 뛰었다. 유난히 오늘따라 깨끗한 피부가 창백해보일 정도로 새하얗다.

 나, 정말 정윤호를 좋아하는 건가요? 나 스스로에게 조용히 질문을 했다. 정윤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을 때, 느껴졌던 감정은 불쾌감과 거부감이 아니라 따스함이였다. 그렇다면 정말 내가 정윤호를 좋아하는 것인걸까.

 조심스럽게 정윤호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데 앞쪽에서 씨발,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윤호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깜짝 놀라며 앞을 쳐다보니 박유천이 욕을 하며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내렸다. 차가운 바람이 훅- 하며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온다.

 박유천은 지금 화가 엄청 많이 났다. 정윤호와 키스를 하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마주친 박유천은… 무서울 정도로 가라앉아있었다. 아무 말없이 한참동안 나와 정윤호를 노려보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정윤호의 팔을 잡고 거의 끌고가다시피하며 택시를 잡았다.

 정윤호와 입술이 맞닿은 순간, 느껴졌던 눈물나도록 따뜻했던 감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얼음판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박유천의 화가 언제, 어떻게 터질 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이 순간. 나도 차라리 정윤호처럼 술을 마셔서 정신을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윤주. 지금 나와. 정윤호 데리고 가.”


 택시가 집 근처에 다다르자 정윤호를 데리고 가라며 박유천이 윤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유천이 택시 요금을 지불하는 동안 나는 정윤호를 거의 안다시피 차 밖으로 끌어냈다. 정윤호를 끌어내기 위해서 낑낑대자, 박유천이 비켜, 내 팔을 툭 치며 자신이 정윤호를 끌어낸다. 박유천이 친 팔이 아픈 것 같아 손으로 슬슬 문질렀다.


 “야! 정윤호!”


 가디건을 걸치고 밖으로 나오는 윤주가 정윤호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지른다. 하긴, 나도 깜짝 놀랐는데 윤주가 저렇게 놀랄만하다. 윤주가 오자, 박유천이 윤주에게 정윤호를 거의 던지다시피 맡긴다.


 “빨리 들어가라. 나 심창민이랑 할 말 있어서.”
 “미쳤어, 정윤호. 진짜 미쳤구나. 너네도 얼른 이야기하고 빨리 들어와.”


 윤주가 정윤호를 깨워서 집으로 들어간다. 윤주가 들어가자 분위기가 다시 착 가라앉았다. 박유천은 교복 마이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마지막 돛대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 라이터 불빛으로 언뜻 보이는 박유천의 얼굴이 꽤 창백하다. 추워서 그런가.

 차가운 새벽 바람이 박유천과 나의 주위를 지나간다. 늦은 새벽이라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박유천은 담벼락에 기대어 서있었다. 박유천은 담배 한 가치를 다 필 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도 그냥 박유천의 옆에 서있었다. 애써 박유천의 시선을 피하지만, 가끔 힐끔거리며 박유천을 바라보면서.


 “9년동안.”


 드디어 박유천이 입을 열었다. 담배 꽁초를 발로 비벼 불을 끄고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는 똑바로 박유천의 얼굴을 쳐다봤다.


 “간절히 기도했어. 신이라는 존재에게.”
 “…….”
 “무슨 일이든 다 할테니까, 제발 아버지라는 사람을 보내달라고.”
 “…….”
 “술집 여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보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꼬리표가 더 싫어서….”
 “…….”
 “9년동안, 아니지 내가 아비 없는 자식이구나, 라는 걸 알게 된 그 순간부터,”
 “…….”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했었어. 아버지라는 사람을 나한테 좀 달라고.”


 어찌나 까만지 별도 보이지않는 하늘을 바라보던 박유천이 시선을 내려, 앞에 있던 나를 바라본다. 박유천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 혼자 괜히 불편해서 시선을 둘 곳을 찾는다.


 “그 기도를 하늘이 들어줬는지, 9살 때 아버지라는 사람이 나타났어.”
 “…….”
 “평소에 자주 엄마를 찾아왔던 아저씨라는 사람이, 내 아버지래.”
 “…….”
 “그래도 좋았어. 아버지라잖아.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아버지라잖아.”
 “…….”


 아까보다는 화가 많이 누그러든, 아니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더 불편한 박유천의 목소리.


 “아버지가 생긴 이후에, 또 누군가를 달라고 기도를 했어. 간절하게. 지금까지도 계속 간절하게 기도를 하는데,”
 “…….”
 “그 기도는 안들어주시네.”
 “…….”
 “9년동안인데. 정말, 9년동안 기도했는데도.”


 대체 박유천은 9년동안 무엇을 위해 저렇게 간절히 기도를 했을까. 박유천을 저렇게 간절하게 만든 그 것을 뭘까.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 그저 물끄러미 박유천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술 마셔서 잘못본 거였으면 했어. 순간, 내가 정말 술을 많이 마셨나? 그 생각이 들었어. 너랑 정윤호. 너희 둘 봤을 때.”
 “유천아.”
 “…지금 내가 너무 화가 나는 이유는,”
 “…….”
 “네가 나랑 눈이 마주쳤을 때,”
 “…….”
 “네가 그냥 나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는거.”
 “…….”
 “오해라고, 실수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나한테 달려오는 널…, 생각했었는데….”
 “…박유천.”
 “아직도… 기도가 부족한가보다. 아직도, 멀었나봐.”


 하하하하하. 박유천이 웃기 시작했다. 말이 웃음이지, 사실은 한숨 소리가 여러번 반복되서 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박유천이 담벼락에서 몸을 뗐다. 움찔하며 뒤로 한걸음 물러난다. 그렇게 의미없는 웃음만 남긴 채 박유천이 나를 스쳐지나가버린다.

 박유천이 집 안으로 들어가고 한참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차가운 새벽 바람이 얼굴을 세차게 때려 얼굴이 벌겋게 됬는데도, 그냥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머릿 속을 꽉 채워버린 생각 때문에.





 나는 밤새도록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내내 뒤척였다. 결국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을 먹으러 본가로 건너갔다. 식탁에는 윤주와 정윤호가 미리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박유천과의 일 때문에 밤새 잊고 있었는데, 정윤호의 얼굴을 보니까 어제 새벽에 정윤호와 했었던 키스가 생각났다. 정윤호, 그 키스를 기억하고 있을까. 맞은편에 정윤호가 앉아있어서 도저히 얼굴을 못들겠다. 빨리 밥을 먹고 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유천이는요? 아직 안일어났어요?”


 밥그릇만 내려다본 채로 허겁지겁 밥을 먹다가 윤주가 아줌마에게 박유천이 어디있는지 묻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박유천이 아직도 안내려왔다. 평소같으면 지금 헐레벌떡 뛰어내려와서 허겁지겁 밥을 먹어야되는데….


 “유천 도련님 오늘 일찍 일어나서 학교 갔어. 아까 갔는데?”
 “에? 박유천이요?”
 “오늘 6시 되서 내려와서는 그냥 학교 가던데?”
 “박유천이 왠일이래.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박유천이 벌써 등교를 했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자 입맛이 싹 사라졌다. 윤주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평소 같았으면 나도 같이 웃었을 텐데, 어제 박유천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기때문에 도저히 같이 웃을 수가 없다. 들고 있던 젓가락을 놓았다. 탁, 소리에 밥을 먹고 있던 정윤호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잘 먹었습니다.”
 “어머, 창민아. 오늘 왜 이렇게 못먹어? 네가 좋아하는 양념 게장도 해놨는데.”
 “오늘은 좀… 입맛이 없네요.”


 목이 턱턱 막히는데 도저히 밥을 넘길 수가 없을 것 같다.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가방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매일 아침마다 늦는 박유천이 없어 오늘 아침 등교는 조금 여유로웠다. 오늘은 박유천도 없는데 버스타지말고 걸어가볼까? 대충 준비를 하고 MP3를 귀에 꼽고 대문 밖을 나왔다.

 아침 공기는 상쾌했다. 이제 정말로 봄이 오고 있었다. 벚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허겁지겁 학교에 가는 평소보다는 백 배 천 배 여유롭고 평화로웠다. 박유천이 없으니 주위를 둘러볼 수가 있다. 그게 좋네. 골목을 내려와 버스 정류장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학교까지 걸어가기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한 것 같아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이미 버스 정류장에는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다들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MP3 트랙을 넘기다가 문득 박유천이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다. 나는 별로 자주 듣는 노래가 아닌데, 지멋대로 내 MP3에 이 곡을 넣어놓았다. 노래를 빼자니 귀찮아서 그냥 넣어둔 노래이다. 평소에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트랙을 다시 넘기려다, 다시 그 노래로 돌렸다.


 「그가 너의 마음을 아프게했니. 나에겐 세상 제일 소중한 너인데-」


 박유천은 컬러링도, 벨소리도 이 노래로 설정해 놓았다. 거의 몇 년째 이 노래였다. 박유천의 가장 좋아하는 노래도, 노래방 18번곡도 이 곡이다. 박유천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데, 나는 왜 이제야 제대로 들어보는 걸까. 천천히 노래 가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넌 장난이라해도.」


 버스 정류장에 설치되어있는 안내판에서 내가 타야할 버스가 전 정류장을 출발했다고 알려준다. 안내 방송이 나오자마자 아이들이 다들 버스를 탈 준비를 한다. 뒤에서 앞으로 치고 나오는 어떤 남학생의 몸에 부딪혔다. 어찌나 세게 부딪혔는지 내가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정류장 기둥을 붙잡아서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부딪힌 곳이 욱신거렸다. 버스가 도착하고, 버스 앞문이 열리자마자 자리를 잡기 위해 아이들이 벌떼같이 몰려든다. 결국 나는 자리에 앉는 것을 포기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들과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로 가득 찬 버스는 만원 버스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틈이 없었다. 숨이 꽉꽉 막히고, 내 주위에 있는 남학생들의 특유의 냄새가 났다. 박유천과 함께 등교를 할 때는, 버스에서는 항상 박유천이 내 자리를 잡아줬었다. 나는 남들의 눈치를 보면서 박유천에게 싫다고 했지만, 박유천은 항상 날 끌어다 자리에 앉혔다.

 자리가 없어 아슬아슬하게 뒷문에 간신히 서있었다. 학교에 도착하기 몇 정류장 전에 회사원들이 대거 내린다. 그 곳에서 어떤 회사원이 황급하게 내리면서 내가 같이 딸려 내리고 말았다. 다시 타려는데 버스 기사 아저씨가 뒷문을 닫아버리고 가버렸다. 출근 시간대라 차가 밀려서 그런 것 같았다. 완전 큰일났다.

 여기에서 학교까지 가야하는 거리가 꽤 남았다. 버스를 타도 아슬아슬하게 들어갈 판에, 걸어가야한다니 짜증이 났다. 뛰어도 지각, 걸어도 지각. 이래나 저래나 지각인데 그냥 편하게 걸어가기로 했다. 가방을 다시 고쳐매고 걷기 시작했다. 시간을 확인하자 등교 시간까지는 10분도 채 남지않았다.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 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아.」


 박유천이 좋아하던 노래가 끝났다. 노래가 끝나자 괜시리 눈물이 났다. 이 노래, 이거 왜 이렇게 슬퍼. 절대 슬픈 노래가 아닌데, 왜 이렇게 슬프지. 아침부터 왜 이래 진짜. 짜증스레 머리를 헝클였다. 짜증나. 짜증나. 아침부터 일진이 너무 안좋아서 너무너무너무 짜증나. 버스에서 얼떨결에 내리게되고, 지각에다…, 오늘 아침부터 일진이 안좋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어쩌면말이지, 내 옆에 박유천 네가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박유천 생각에 괜히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


 박유천과 싸운지 벌써 이주일이나 지났다. 이제는 정말로 본격적인 봄이 되었다. 낮이 되면 교복 동복이 더울 정도로 날씨가 많이 풀리고 따뜻해졌다. 그렇게 계절은 조금씩 변하는데 여전히 박유천은 나를 피했다. 학교 가는 날에는 혼자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먼저 학교로 가버리고, 학교에 가지않는 휴일이나 주말에는 친구를 만나러 아침 일찍 밖에 나가서 밤 늦게 집에 들어오거나 아니면 아예 방에 틀어박혀서 한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혹여나 박유천과 내가 마주치는 일이 있으면 박유천은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취급하면서 그냥 지나가버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박유천이 먼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나는 박유천이 학교에 먼저 가버린 이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지각을 했다.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나의 발걸음이 엄청나게 느리다는 것을. 다리가 길면 그만큼 걸음이 빠르다고 하는데, 나는 큰 키에도 불구하고 걸음이 몹시 느렸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사실을 내가 이제야 알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박유천을 데리고 다닌 것이 아니라 박유천이 나를 데리고 다닌 것이었다.  

 처음 일주일 동안 지각을 했을 때는 웃으면서 앞으로 지각하지 말라며 주의만 주던 학주가 이주 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지각을 하자 결국에는 내게 벌을 내렸다. 2학년들이 쓰는 3층, 4층에 있는 화장실 모두 청소하기. 각 층마다 화장실 두 개씩에, 교사용 화장실 한 개씩. 총 여섯 개의 화장실을 나 혼자 청소해야했다. 너무 많다며 질색하는 내게 학주는 노는 토요일 아침부터 나와서 청소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응원 아닌 응원을 했다.

 결국 나는 이렇게 좋은 휴일에 아침부터 나와서 변기나 닦는 신세가 되버렸다. 놀토 휴업일이라 텅 비어버린 학교에 나 혼자 나와 이렇게 화장실 청소를 해야하다니. 이것 저것 다 짜증이 났다. 결국 생각의 마지막은 박유천. 박유천이 모든 일의 원인이다. 짜증이 난다. 하지만 이어서 느껴지는 한쪽 가슴의 욱신거림. 휴. 발로 화장실 문을 뻥 찼다.

 더러운 화장실 바닥에 세제를 뿌리고 솔로 때를 벗겨낸다. 간간히 바지와 옷에 튀기는 세제 때문에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소매도 둘둘 걷어올렸다. 땀이 비오듯이 흘렀다. 이미 상의는 땀에 절어 몸에 달라붙었다. 거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화장실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교사용 화장실은 청결하고 냄새도 안나 청소가 금방 끝나지만 여기는 남학생들이 쓰는 곳이라서 유난히 냄새가 심하다. 찝찝하고 불쾌하다. 분명 나도 이 화장실을 쓰지만 쓸 때는 이 곳이 이렇게 더러운 곳인지 생각도 못했다. 손에 들고 있는 솔을 내던지고 싶지만 겨우 겨우 참고 솔로 바닥을 문질러 때를 벗겨낸다. 어찌나 때가 많은지 온통 구정물이다.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나도 모르게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노래를 부름과 동시에 박유천이 생각났다. 이 모든 일의 근본인 박유천. 소심하고 왕치사하고 밴댕이 소갈딱지 박유천. 이주 내내 내 머릿 속을 가득 매웠던 박유천. 머리 속을 가득 채운 박유천 때문에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었다.


 “넌 장난이라해도….”


 사실 이주 내내 혹여나 마주치면 박유천이 인사라도 해줄까하는 기대감에 일부러 박유천의 근처를 맴돌았다. 하지만 박유천은 날 봐도 아는 척, 아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와 싸우지 않았을 때 보다 훨씬 더 잘 지내는 것 같았다. 화가 났다. 나는 박유천 때문에 이렇게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심란한데 왜 박유천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인 박유천은 저렇게 잘 지내는 걸까.


 “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 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아….”


 박유천이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날 놔둔 것은 처음이다. 매일 투닥거리고 싸워도 다음 날이면 항상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나를 대했다. 먼저 손을 내밀고 먼저 다가오는 박유천. 그래서 나는 박유천이 항상 이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박유천이 없는 내 삶은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침에도 바쁘지않고, 스트레스도 받지않고, 마음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박유천이 내 삶에서 잠시 한발짝 뒤로 물러서자 나에게 닥친 내 삶은 엉망이었다. 제대로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등교도, 식사도, 그리고 내 마음도. 모두 다 엉망이었다.


 “창민아.”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의 등장에 깜짝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정윤호가 문 앞에 서있었다. 바닥에 주저앉는 바람에 엉덩이에 구정물이 스며들었다. 재빨리 일어섰지만 엉덩이가 축축했다. 괜찮아? 하며 다가오는 정윤호가 나를 돌려 옷이 젖은 것을 확인한다.

 정윤호와 이렇게 일대일로 마주치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사실 이주동안 나의 온 정신이 박유천을 향해 있어서 정윤호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막상 정윤호와 얼굴을 마주치고 있으니까 그때의 키스가 생각났다. 나에겐 첫키스였다. 술에 취한 정윤호에게 일방적으로 당해버린 따뜻하지만 쌉싸름한 첫키스.


 “옷 가져왔어. 화장실 청소하면 옷 젖을 것 같애서.”


 정윤호가 들고 있던 종이 봉투를 나에게 건내주었다. 봉투를 열어 확인해보니 내 바지였다. 정윤호를 쳐다보자 머쓱하게 웃는다. 내가 고맙다고 말도 하기 전에 정윤호가 또 무언가를 건낸다. 차가운 이온 음료. 이제 막 사왔는지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차다.


 “더울까봐 사왔어. 조금 쉬다 해.”


 정윤호는 참 따뜻하다. 그런 정윤호의 따뜻함을 받을 미래의 여자를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정윤호의 따뜻함이 나를 향해 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묘한 기분이다.

 정윤호와 화장실 창틀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앉아있으니 바람이 들어오면서 땀을 알아서 말려주었다. 바닥에는 청소 도구들이 널려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이대로 있고 싶었다. 나른하고 상쾌한 이 기분은 만끽하고 싶다.


 “…너 기억나?”
 “뭐가…?”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나에게 정윤호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기억이 나냐고. 무슨 질문인지 짐작이 가지만 나는 일부러 다시 한번 더 물었다. 그러자 정윤호가 시선을 거두면서 작게 말한다. 내게 들릴 듯 말듯. 뭐라구? 내가 다시 한번 더 크게 묻자 정윤호가 한숨 쉬면서 말을 뱉어낸다.


 “키스.”


 내가 그 키스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알코올 향이 나는 쌉싸름한 내 첫키스를. 음료수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날 있었던 일들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데 오직 그 것만 기억나.”
 “…….”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어색해 다리를 덜렁덜렁 흔들면서 정윤호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리라도 흔들지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도저히 이 상황을 참을 수 없었을 지도 몰랐다. 정윤호와 이렇게 나란히 앉아서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뭔가 웃겼다. 웃음이 실실 났다. 아무렇지도 않게 정윤호와 단 둘이 키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너무 웃겼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이 상황.


 “난 좋았는데. …키스라는 것이 참 달구나, 그 생각을 했어.”
 “…….”
 “…미안.”
 “…….”
 “나 혼자만 좋아서.”


 미안. 정윤호가 작게 속삭였다. 사과를 받고, 사과를 해야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정윤호를 보고 괜찮은 척하면서 웃었다. 내 웃음을 보자 정윤호가 마음이 놓이는지 그제야 웃는다. 그런데 어째서 내게는 쌉싸름했던 키스가 정윤호에게는 달콤했을까. 난 따뜻하기만 했는데. 아니다, 그 따뜻함이 원래 좋은건가?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정윤호의 키스. 가슴이 몰랑거리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보다는 그냥 정말 따뜻하다는 생각밖에 들지않는 정윤호의 키스였다. 정윤호는 민망한 듯 얼굴이 붉어졌다.


 “좀 도와줄까?”
 “아냐. 괜찮아. 혼자 할 수 있어. 얼마 안남았거든.”


 창틀에 걸터앉아있던 정윤호가 그만 가봐야겠다며 바닥으로 내려갔다. 청소를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얼굴이다. 정윤호를 배웅하기 위해 덩달아 내려가려는 나를 보고 조금 더 쉬다가 청소하라며 먼저 화장실 밖을 나갔다. 몸을 돌려 창 밖을 보자 금새 계단을 내려간 정윤호가 후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뒤를 돌아본 정윤호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다. 정윤호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날이 참 좋았다. 활짝 만개한 벚꽃들이 바람을 따라 가지를 흔들어댔다. 벚꽃 놀이 가고 싶네. 이런 날 바깥으로 놀러나 갔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학교 화장실에서 청소나 하는 내 신세가 그저 처량하기만 하다. 어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얼른 청소를 하고 집에나 가야겠다. 청소를 하기 위해 창틀에서 내려오자마자 누군가가 바깥에서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정윤호가 뭐 놔두고 갔나? 아님 장난 치는 건가? 당연히 정윤호라고 생각했다. 장난스럽게 들어오세요-라고 소리를 쳤다.


 “들어오세요.”


 들어오라고 말했는데도 화장실 문은 열릴 생각을 않았다. 당연히 정윤호가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고 자리에 가만히 서서 기다렸는데 아무도 안들어와서 내가 직접 문을 열었다. 정윤호가 아니면 누구지? 누가 장난치나, 토요일에 학교 나온 사람도 없는데.


 “…….”


 화장실 문을 열었지만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목을 빼고 좌우를 살펴보지만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안보였다. 괜히 기분이 상해 문을 닫으려는데 바닥에 검은 비닐 봉지가 보였다. 뭔가 싶어 비닐 봉지를 열어보았다.


 “……."


 그 검은 비닐 봉지 안에는 막 사온 것 같이 물기가 있는 차가운 바나나 우유와 크림빵이 들어있었다.



 *


 “창민아.”
 “…….”
 “창민아.”
 “…….”
 “심창민!”
 “네…넷!”


 정신을 차리고 나를 부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국사 선생님이 들고 있던 지휘봉으로 내 머리를 탁 내려찍었다. 욱신거리면서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신 어디다 팔아놓고 왔어? 국사 선생님은 새로 오신 젊은 여자 선생님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국사라서 가끔씩  국사 선생님께 질문을 하러가는데 그 덕분에 국사 선생님과 많이 친해졌다.


 “날씨가 이렇게 좋으니깐 공부가 안되니?”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는 교탁으로 다시 돌아가서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다. 사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누가 학교에 콕 박혀서 공부를 하고 싶을까. 마음도 싱숭생숭하고 공부도 안되고…. 거기다가 나는 박유천까지 사이가 안좋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거의 하루종일 박유천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교탁에 선 국사 선생님도 수업을 진행하기가 싫었는지 책을 덮어버린다. 그리고는 교탁에 몸을 살짝 기댄 후에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시작했다. 반 애들은 예쁜 국사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라고 모두 집중해서 듣는 중이다. 어휴. 지금 나는 남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을 기분이 아니다. 깨어있으면 해결도 나지않는 박유천 생각이나 하니까 차라리 잠이나 잘까 싶어서 책상에 엎드렸다.

 갑자기 허벅지가 덜덜 떨렸다. 교복 바지 주머니에 넣어놓았던 휴대폰이 짧게 진동을 한 것 같았다. 짧게 한번 울리고 끊긴 것을 보니 문자가 온 것 같다.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꺼내서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


 문자를 보낸 사람은 박유천이였다. 심장이 갑자기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살짝 떨리는 손으로 확인 버튼을 누르자 박유천이 보낸 메세지가 떴다.


 「미」


 메시지 내용은 이렇게 딱 한 글자. 대체 무슨 말이지. 잘못 보낸건가? 알 수 없는 메시지 내용에 당황하고 있는데 들고 있던 휴대폰이 다시 진동하며 새로운 메시지가 연달아 떴다.


 「안」


 「해」





 수업이 마치는 종이 울렸다. 국사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는 가장 재미있는 첫키스 부분에서 끊겼고, 아이들은 아쉬운 소리를 하며 다음 시간에 들려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따. 선생님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교실을 나갔다. 다음 시간에는 꼭 수업 한다는 말을 잊지 않고. 나도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뒷문을 열었다.


 “심창민.”


 내 귀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문을 열자마자 눈 앞에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 익숙한 모습의 박유천. 웃고 있는 박유천.


 “잘 지냈냐.”


 말을 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말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고개만 끄덕이는 나를 보며 박유천이 활짝 웃는다.


 “보고 싶었다. 짜샤.”


 형님 안보고 싶었냐? 박유천이 내 앞에 다가와서 머리를 헝클인다. 정말 오랜만이다. 익숙한 박유천을 보는 것. 다시 돌아온 박유천에 대한 고마움인지 회복된 우리 관계에 대한 기쁨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그래서 박유천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시 돌아와줘서 고맙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다시 웃어줘서 고맙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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