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보게, 나의 첫키스는 참으로 쓰다네
골든 리트리버인 맥스는 개 주제에 고급 재료를 사용해서 만든 사료를 먹는다. 거기다가 후식까지 웰빙 시대에 맞춰 뭐 어쩌구 저쩌구, 아무튼 후식조차 몸에 좋은 것으로 먹는다. 집에서 쉬는 일요일에는 맥스의 밥을 내가 챙긴다. 일요일에는 아줌마가 안나오시기 때문에 내가 맥스의 사료를 찾아서 그릇에 담고 손수, 친히 맥스에게 갖다주기까지한다. 개 사료 챙겨주는 게 무슨 대수냐, 개가 손이 있어서 저 혼자 사료를 챙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좀 챙겨주면 어디가 덧나나 할 수 있지만, 오늘같이 기분이 매우 저조한 날에는 개 사료 챙겨주는 일이 몹시 빈정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밥도 못 챙겨먹을 판에, 개새끼 밥은 제 때 안챙겨주면 안된다니. 뭐 이런 아이러니한 경우를 봤나. 정말 이럴 때 느끼는 거지만, 주인 잘 만난 맥스의 팔자가 상팔자다. 어떻게 보면 맥스는 나보다 나은 인생을 살고 있다.
일요일에는 아줌마도 안나오시는 날이고, 일요일에도 바쁜 회장님 덕분에 아버지도 회장님의 스케쥴에 따라 움직이기때문에 보통 거의 세 끼를 나 혼자 해결해야한다. 나는 당최 요리에 소질이 없는 것인지 아무리 요리를 해도 실력이 늘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는 밥보다는 항상 라면을 끓여먹는다. 오늘도 아버지가 회장님의 아침 스케쥴 때문에 나가서 나 혼자 있었다. 아버지가 밥을 차려놓긴했는데, 내가 늦게 일어난 탓에 밥이 식어버렸다. 솔직히 식은 밥은 먹고 싶지않아서 어쩔 수 없이 아침부터 라면을 끓여먹었다.
“맛있냐.”
“멍! 멍!”
“불쌍한 놈. 넌 그렇게 많은 생명체 중에서 왜 하필 개로 태어났냐. 개새끼, 개자식, 개년, 개…. 아무튼 나쁜건 다 개가 붙던데….”
배가 많이 고팠는지 그릇을 내려놓자마자 달려들어 사료를 허겁지겁 먹어대는 맥스의 등을 결을 따라 쓰다듬었다. 맥스는 순해서 밥 먹을 때 건들여도 화내지않는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건들인다는 말은 맥스한테는 안통한다. 천천히 먹어. 아무리 매 끼니마다 비싼 사료를 먹어도 맥스도 나처럼 이 집에 종속된 소유물일 뿐이다. 맥스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불쌍하고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대체 누가 누구보고 안타까워하는 건진 모르겠다만.
“그래도 부럽다. 넌 먹을 복은 타고 났잖니. 난 먹을 복이 없어서 아침부터 라면 끓여먹는다. 짜샤.”
아침부터 밥 대신 라면을 먹었더니 금방 허기가 진다. 라면을 더 끓여먹을까하는 생각에 얼른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저쪽 본가에서 사모님이 걸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무척 오랜만에 보는 사모님이다. 가까이 다가오는 사모님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사모님이 환하게 웃는다. 어머, 창민아.
“안녕하셨어요, 사모님.”
“그래, 오랜만이다. 창민아.”
사모님은 박유천과 무척 닮았다. 우유에 데친 듯한 하얗고 뽀얀 피부는 특히나 더욱.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사모님은 돌아가신 사모님보다 외모는 더 아름다울지는 몰라도 기품이나 우아함같은게 없다. 처음 사모님이 박유천의 손을 잡고 이 집에 왔을 때는 어린 내 눈에도 낯설고 천박해보였다. 짙은 화장에 짧은 치마를 입고 싸구려 향수를 쓰던 전형적인 술집 여자의 모습. 지금은 그나마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짙은 화장과 야한 옷차림은 여전하다.
“요새 어떻게 지내니? 유천이랑도 잘 지내고?”
“…네. 잘 지내고 있어요.”
“우리 유천이, 창민이 네가 좀 챙겨줘. 덩치는 저렇게 커도 아직 애잖아, 그치?”
“…네.”
“이거는 용돈으로 써. 유천이랑 맛있는 것두 사먹구. 응? 알았지?”
나보고 박유천을 챙겨달라며 활짝 웃는다. 사모님의 웃는 모습은 박유천과 똑같다. 박유천은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 아마 사모님을 닮은 것 같다. 사모님이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내 만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내서 내 손에 쥐어준다. 그러고는 작별 인사를 하며 차가 대기하고 있는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오늘도 사모님은 바쁘시다. 오늘도 사모님의 화장은 진하고, 치마는 몹시 짧다.
사모님이 대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 다시 맥스의 집 앞에서 쭈그려앉았다. 츄리닝 주머니에 손을 넣자 딱딱한 담배곽이 손에 쥐여진다. 매일 피는 건 아니고 아주 가끔씩 담배가 정말 피고 싶을 때 한 개피씩 핀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담배 한 곽을 사면 꽤 오래 핀다. 박유천도 가끔 담배를 피긴하지만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다. 아, 박유천은 술과 담배에 민감하다. 자기가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는 것은 나쁘게 생각하지않으면서 나는 절대로 못하게 막는다. 박유천은 자신 스스로에게는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쫀쫀한 놈이다. 나쁜 자식. 박유천을 생각하니까 또 기분이 나빠진다.
그날 싸운 이후로 박유천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일부러 내가 박유천을 피해다녔다. 평소보다 몇 십분 더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정윤호와 윤주와 함께 차를 타고 등교를 한다. 박유천은 혼자서 먼저 가버리는 나에게 별 말이 없었다. 얼굴 보기가 껄끄럽고, 불편해서 내가 도저히 박유천을 평소처럼 대할 수가 없다. 원래 박유천과 자주 싸웠지만, 요즘 들어서 더 자주 싸우는 것 같다. 그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자꾸 박유천과 싸운다. 서로 발톱을 세우고, 경계를 하며 서로를 햘퀸다. 나이를 먹는 탓일까, 예전 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풀렸을 텐데,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
열심히 사료를 먹는 맥스를 두고 본가의 뒷뜰로 갔다. 뒷뜰은 본가 식구들이 거의 오지않는 곳이였다. 이곳은 내가 가끔씩 본가 식구들 몰래 담배를 필 때 애용하는 장소다. 뒷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나무 벤치에 앉았다. 지금은 겨울이라 잔디도 죽고 나무도 앙상해서 볼품없지만, 여름이 되면 이 곳은 참 아름답다. 의자에 깊숙히 기대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야. 맥스야. 저리로 가.”
담배불을 붙이자마자 저 멀리서 맥스가 사료를 먹다가 말고 나에게 달려왔다. 담배 연기를 보고는 폴짝 폴짝 뛰어다니며 멍멍 짖어댄다. 담배 냄새가 매케해서 그런가 싶어서 더 깊숙한 곳으로 가려고 일어서는데 오히려 더 크게 짖어댄다. 왜 그런가 싶어 짖어대는 맥스의 앞에 쪼그려앉자 코를 킁킁거리며 내게 다가온다. 자꾸 내 쪽으로 파고드는 맥스를 손으로 밀어내는 데도 짖으면서 자꾸 파고든다. 덩치는 산만한게 애교를 떠는 건가. 자꾸 밀어내도 다시 돌아온다. 결국 그러려니 싶어서 맥스를 외면하고 담배를 피는데,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누군가가 가져가버렸다.
쪼그려앉아 있는 탓에 다리가 저려 빨리 일어나지를 못하겠다. 윤주인가 싶어서 위를 올려다보니 박유천이 담배를 가져가서는 바닥에 떨어뜨려 꺼버린다. 잔디밭인데 저렇게 담배를 버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우, 저 놈의 맥스. 먹으라고 갖다준 사료는 안먹고 맥스가 자꾸 내 주위를 어슬렁거려서 박유천에게 들켜버렸다. 발 밑에 떨어뜨려 꺼버린 담배를 슬리퍼로 박박 비벼 끄는 박유천을 보고 소리가 나게 코웃음을 쳤다. 웃긴다, 정말. 왠 상관이셔. 담배곽에서 또 다른 담배를 꺼내서 불을 붙이고 입에 물었다. 그런데 박유천이 이번에도 또 가져가버린다. 이번에는 끄지않고 자기가 핀다.
“…박유천, 너 뭐냐.”
“너 폐암 걸려서 뒤지고 싶냐.”
“참나, 지랄하네.”
“난 심창민 네가 나보다 먼저 죽는 꼴 못본다. 죽어도 내가 먼저 죽을 거야.”
“야, 지랄 쌈을 싸먹어라.”
“…….”
나보고는 폐암 걸려서 뒤지고 싶냐며 협박하더니 자기가 담배를 더 맛있게 핀다. 박유천이 담배를 피는 것을 보니까 나도 너무 피고 싶다. 박유천 몰래 살금살금 담배곽을 열어 돛대를 꺼내려는데 박유천이 가져가버린다. 야! 바락 소리 지르는 내 모습에 피식 웃는다. 돛대를 처참하게 밟아버린다. 아, 씨발. 저 귀중한 걸 밟아버리다니. 박유천의 발에 무참히도 밟혀버린 돛대를 바라보다가 박유천을 쳐다봤다. 어찌나 맛있게 피우는지 정말 담배가 말린다. 말려. 괜히 신경질이 나서 너도 폐암 걸려서 죽고 싶냐고 투덜댔다. 박유천은 그저 웃는다. 박유천은 담배 한 개피를 다 피우는 동안 아무 말이 없다. 담배를 거의 다 피우고, 바닥에 비벼 끈다.
“…….”
“…너도 폐암 걸려서 뒤지고 싶냐.”
“나는 심창민 너한테 욕을 하도 많이 얻어먹어서 장수할 것 같다.”
“너, 니가 욕 아-주 많이 얻어먹는거, 알긴 아는구나?”
“나는 욕을 너무 많이 얻어먹어서 장수할 거니까 너도 장수해야지. 근데 심창민 너는 욕 같은거는 얻어먹을 스타일은 아니니까, 니가 알아서 몸 건강 챙겨야지.”
“…….”
“운동도 안하면서, 담배 이런 거 피면 진짜 죽음이다, 죽음. 진짜 젊은 나이에 폐암 걸려 뒤지는 수도 있다니깐?”
“신경 꺼. 남이사.”
“…죽어도 나 먼저 죽을 꺼니까, 넌 오래오래 살아라.”
평소의 박유천 답지않은 진지한 목소리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박유천의 말을 들으니 목구멍이 간질간질하고 명치 끝을 누가 누르는 듯 꽉 아파왔다. 부정타게 자꾸 죽는다는 소리하지마. 괜히 박유천에게 신경질을 냈다. 내 말에 박유천이 씁쓸하게 웃는다. 박유천의 이런 모습 진짜진짜진짜로- 적응이 안된다.
박유천은 어릴 때부터 많은 걸 알았다. 정윤호가 또래 아이들에 비해 성숙하고 철이 들었다면 박유천은 어린 아이들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알았다. 천박한 밤 문화라던가, 잘나가는 회사 우두머리의 정부, 그의 숨겨진 아들로써 살아간다는 것들. 뭐 그런 것들에 대하여. 처음 만난 어린 박유천의 눈은 안쓰러울 정도로 공허함으로 가득 차있었다.
박유천이 머리를 긁적인다.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는지 자꾸 혀를 내밀어 입술에 침을 바른다. 신경 안쓰는 척 하면서 그런 박유천의 모습을 유심히 다 쳐다본다. 그런 박유천을 힐끔 쳐다보는 나도 아무 말이 없고, 박유천도 아무 말이 없다. 끝이 나지않을 듯한 침묵에 숨을 들이키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어색하다. 박유천과 나는 못잡아 먹어서 안달일 것 같이 싸우는 게 정말 잘 어울린다. 정말.
“…미안하다. 심창민.”
“…….”
한참을 조용히 쪼그려 앉아있던 박유천이 입을 열었다. 미안. 미안하다는 박유천의 말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쪼그려 앉아있던 박유천은 이미 일어서있었다. 나도 따라서 일어서서는 박유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많이 헬쓱해진 얼굴. 박유천도 그 동안 힘들었던 걸까. 박유천이 내게 손을 내민다. 화해의 악수라며 박유천이 머뭇거리는 내 손을 잡는다.
“심창민, 이제 싸우지말자.”
“ …….”
“예전처럼 네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거나 그러지않을게. 그래도…,”
“…….”
“…지긋지긋하다는 그런 말을 하지말아줘. 그런 말 들을 때마다,”
“…….”
“힘들다.”
“야….”
“…아니다. 아무튼 앞으로 싸우지말자. 우리 무슨 애도 아니고 열 여덟씩이나 먹어놓고는 매일 싸우냐.”
금새 가벼워진 박유천의 목소리. 박유천이 웃는다. 그런데 자꾸 억지로 웃는 것 같다. 박유천은 항상 저랬다. 어릴 때부터. 초등학교 때 박유천과 싸울 때마다 박유천은 화내다가도 금방 헤헤거렸다. 그런 박유천의 모습을 보고 담임 선생님은 안쓰러워했었다. 나를 붙잡고 박유천에게 잘해주라고 했었다. 박유천은 지금 자신을 감추는 거라고. 저렇게 자신을 감추기만 하다가는 병이 들꺼라고. 제멋대로 도련님처럼 행동하는 박유천을 불쌍한 아이라고 이야기하는 선생님의 말이 이해가 가지않았었다. 선생님의 말은 나이가 들어서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박유천은 애써 스스로를 가벼움으로 포장한다.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일부러 감춰버린다. 상처받기 싫어서. 자신의 본심을 알아버린 사람들이 자신에게 상처를 줄까봐.
나를 향해 웃는 박유천의 입꼬리가 조금 떨렸다. 그런 박유천의 모습을 보자 명치 끝이 아프기 시작했다. 목이 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왼쪽 가슴 저 깊숙한 곳이 시큰거리며 아프기 시작했다. 박유천의 옆에 서있다가는 괜히 이유없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먼저 자리를 떴다.
사실, 내가 왜 이렇게 아픈지, 나도 잘 모르겠다.
*
“요새 유천 도련님이랑 어떻게 지내니?”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와 늦은 저녁을 함께 먹었다. 아버지나 나나 워낙에 말이 없는 성격인데다, 평소 말을 많이 할 기회도 없어서 부자 (父子) 사이치고는 몹시 어색하다. 18년동안 두 사람을 위한 요리를 해온 아버지는 김치찌개 하나는 끝내주게 잘 만든다. 돼지 고기를 넣어 얼큰하게 끓인 김치찌개를 앞에 두고 부자가 마주앉아 밥을 먹는다. 조용히 밥을 먹고 있는데, 아버지가 박유천과 요새 어떠냐며 물었다.
유천 도련님. 아버지는 항상 박유천과 정윤호에게 도련님이라고 불렀다. 윤주에게도 아가씨라고 부르고. 처음부터 그랬다. 코흘리개 정윤호에게도 아버지는 윤호 도련님, 윤호 도련님하며 깍듯이 대했다. 뭐, 그게 당연한거지만. 아버지의 입에서 도련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기분이 묘해진다. 평소 함께 지내는 박유천과 정윤호는 스스럼없는 친구와 다름없는데 유천 도련님과 윤호 도련님은 그것과 다르다. 도련님과 나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놓여있는 것 같다. 범접할 수 없고 감히 넘을 수 없는 벽.
“뭐,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요.”
“니가 좀 잘 챙겨드려. 매일 티격태격 싸우지말고.”
“…네.”
“윤호 도련님도 그렇고…. 윤주 아가씨야 워낙 똑부러지니까 괜찮지만, 윤호 도련님은 한국에 돌아온지 얼마 안됬으니까 창민이 니가 좀 많이 도와드리고. 알았지?”
목이 꽉 막힌 듯한 느낌이 들고, 말이 나오지않았다. 대답을 할 수가 없어 숟가락을 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어서 먹으라며 반찬을 얹어줬다. 억지로 입을 끌어올려 아버지를 향해 웃었다. 아버지에게 차마 털어놓지는 못했지만 그 순간 허탈감과 무력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박유천과 친구처럼 지내지만 결국 박유천과 나는 친구가 아닌 것이다. 고용주와 고용자. 재벌 아들과 운전 기사 아들. 그런 수식어로 정의할 수 있는 박유천과 나의 관계.
“…그리고 말이다, 창민아.”
“네… 아버지.”
“…실은 말이다….”
굳어버린 표정을 억지로 풀고 아버지를 향해 웃었다. 아버지는 눈도 못마주치고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인다. 무슨 말 못할 사정이길래…. 내가 아버지를 멀뚱히 쳐다보자 웃으신다. 우리 아버지, 오늘 다시 보니까 나름 귀여운 면도 있는 것 같다. 아버지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말을 이었다.
“나…, 결혼 하려고.”
“…….”
“…저기 송…씨 아줌마랑….”
“알고 있었어요.”
“…으, 응?”
“아버지랑 아줌마랑… 좋아하고 계신거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구요.”
송씨 아줌마가 괜히 아침 식사에 나를 본가까지 부르는게 아니다. 아버지가 회장님따라서 출장을 가는 날이면 아줌마가 우리집에 와서 반찬이며, 밥이며, 국이며 이것 저것 다 만들어서 냉장고에 차곡차곡 채워넣어주고 빨래까지 해주시는데 정말 엄청난 둔치가 아니면 다 눈치 챌 일이다. 그때는 한번 송씨 아줌마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하는 모습으로 요리를 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 날은 아버지의 생일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아줌마가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은 처음이였다. 아줌마는 같이 식사하고 가자는 내 권유를 뿌리치고, 음식만 만들어주고 가버리셨지만 어쨌든 그 날 이후 둘 사이는 의심할 겨를도 없이 확실했다.
“저도 좋아요.”
“…저, 정말?”
“네….”
친엄마는 나를 낳자마자 돌아가셨고, 홀로 남겨진 아버지가 핏덩이였던 나를 지금까지 혼자 키우셨다. 일가 친척 하나없는 천애 고아로 자란 아버지라 의지할 친척조차 없이 나를 힘들게 키웠지만 그래도 아버지내 앞에서 한번도 찡그리거나 화를 낸 적이 없다. 가끔씩 아버지를 보면 마음이 찌릿찌릿하며 아프다. 지금 아버지의 속은 얼마나 까맣게 타들어갔을까, 하는 생각에.
너그럽지만 소심하고 수줍은 성격인 아버지는 지금까지 여자 한번 제대로 못 만나봤을거다. 내가 어릴 때는 나를 키우느랴 바쁘고, 이제는 회장님 스케쥴이 너무 바쁘니 제대로 쉴 시간도 없으니 가뭄에 콩 나듯 들어오는 중매 자리는 의도치않게 거절하게 된다. 다행히 어릴 때부터 우리 부자와 함께 지내 온 송씨 아줌마와 좋은 관계라니. 이제는 정말 아버지가 행복해지셨으면 좋겠다.
“ 이제는 아버지도 행복해지셔야죠.”
“…나, 나는 창민이 너만 있어도 행복해.”
“그래도 아버지도 아버지만 챙겨주고 사랑해줄 사람이 있어야죠.”
“…고맙다, 창민아.”
언제 다같이 식사나 한번 할까? 아버지의 들뜬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직은 나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낯설고 불편하지만, 다른 세계의 이야기같지만 이제 곧 익숙해지고 좋아지겠지. 이제 아버지가 없는 주말에도 따뜻한 밥을 차려줄 사람이 있고, 학교를 갔다오면 불이 켜져있는 집에 들어올 수 있고, 아프면… 진심으로 함께 아파해줄 사람이 생기겠지….
*
아버지와 회장님, 사모님이 해외로 출장을 가셨다. 뭐, 해외 출장은 종종 있는 일이라서 나도 그렇고 삼남매도 익숙한 일이다. 학교를 일찍 마치고 윤주와 함께 집에 왔다. 박유천은 잠시 친구를 만난다며 나를 먼저 보냈고, 정윤호도 집에 먼저 가버렸었다. 윤주와 본가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2층에서 정윤호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정윤호가 수트를 빼입고 내려오고 있었다. 윤주가 정윤호를 보고 이죽댔다. 왠일이래, 맨날 교복만 입던 정윤호가.
사실 정윤호가 밤에 따로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모습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학교와 집밖에 모르는 것 같았던 정윤호가 왠일이래? 나도, 윤주도 정윤호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정윤호가 낮게 중얼거린다.
“친구 생일이라서.”
아, 뭐야. 정윤호 졸라 똥폼 재려구 목소리 낮게 까는거야? 짜증나. 윤주가 피식 웃으면서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정윤호는 지금 똥폼 재려구 목소리를 낮게 까는 게 아니라 수트를 입은 모습이 스스로 쑥스러워서 그러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모습을 남에게 보여준다는게 어색하겠지.
“갔다올게.”
“…언제 들어와?”
“일찍 올거야.”
“술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고!”
반짝반짝한 구두를 신고 현관문을 나서는 정윤호의 뒷통수를 향해 윤주가 술 조금만 마시라며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정윤호가 뒤를 돌아보며 무표정한 표정으로 서있다가, 씩 웃는다. 다녀올게. 정윤호가 살짝 손을 들고 인사를 한 후, 문을 닫고 나갔다. 윤주가 놓았던 숟가락을 들며 중얼거렸다. 우리 오빠지만 멋있긴 졸라 멋지네.
정윤호, 참 멋있다. 같은 남자인 내가 봐도 멋지다.
윤주가 혼자 집에 있으면 심심하다고 해서 윤주와 내가 간식을 먹으며 본가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사실 나도 집에 가도 아무도 없으니깐 심심했으니 놀다가 가라는 윤주의 제안이 나쁘지않았다. 윤주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12시가 훌쩍 넘었다. 시계를 쳐다보던 윤주가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왜 안와? 술 많이 마셨어?”
정윤호인 것같았다. 그래도 오빠라고 걱정이 됬나보다. 아직 박유천도 집에 오지않았다. 나도 휴대폰을 꺼냈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박유천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 액정에 박유천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깜빡이며 통화음이 들렸다. 맥스보다 못한 놈. 내가 자신을 이렇게 저장한 걸 박유천이 알게되면 나는 뼈도 못추릴 거다. 암.
“ …어, 심창민.”
“지금 시간이 몇신데. 너, 안오냐?”
“지금 들어가는 길이다.”
“빨리 와.”
“왠일이냐. 니가 내 걱정을 다하고.”
저 휴대폰 너머 박유천의 낮게 웃는 목소리가 들린다. 박유천의 웃는 목소리에 괜히 아니꼬와져서 아무튼 빨리와, 말을 툭 던지고 전화를 끊었다. 박유천과의 통화를 끊고 윤주를 쳐다보자 윤주가 한숨을 쉬고 있었다. 왜? 내 질문에 정윤호 병신 새끼라며 욕을 했다.
“술에 쩔어서 재중이 오빠가 대신 전화 받더라.”
“그럼 어떡해? 재중이 형이 데려다 주려나?”
“재중이 오빠가 다른 친구들도 챙겨야되서, 집에 너 있으면 좀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하더라.”
“…아, 그래?”
“나랑 같이 갈래? 미안해, 창민아.”
솔직히 12시가 넘었는데 나가기 귀찮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정윤호의 일이다. 당연히 내가 가야하는 일인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밤공기가 꽤 쌀쌀한 탓에 윤주가 방에서 외투를 가져오고, 나도 집에서 츄리닝 잠바를 입고 대문을 나섰다.
정윤호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한번도 술을 마셨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박유천은 거의 매일 밤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정윤호는 그런 애가 아니였는데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마셨다고 하는데 솔직히 믿기지가 않는다. 왠지 정윤호는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을 것같이 생겼는데, 뭐 또 그게 아닌가보다.
“너네 어디가.”
윤주와 골목을 내려가고 있는데 멀리서 박유천이 걸어오고 있었다. 아직까지 교복 차림이였다. 와이셔츠 단추는 하나 풀어서, 넥타이는 헐겁고 이름표는 또 어디갔는지…. 가방은 한쪽 어깨에 삐딱하게 맨 체, 우리 앞에 멈춰서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윤주와 나도 걸음을 멈추고 박유천을 쳐다봤다. 박유천이 왜 나오냐는 의아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윤호 오빠 술에 쩔어서 몸도 못가눈데. 그래서 창민이랑 데리러 가는 길이야.”
“…정윤호, 어디 갔는데.”
“친구 생일 파티. 재중이 오빠가 창민이보고 데리러 오래.”
“이 씨발… 김재중 이 새끼 진짜.”
이게 어디서 욕질이야! 재중이 형보고 새끼거리는 박유천에게 한마디 하려는데 박유천이 갑자기 내 팔목을 잡았다. 나를 윤주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올라가라는 듯 윤주의 어깨를 밀었다.
“정윤주. 너 그냥 심창민이랑 빨리 집에 들어가라. 내가 정윤호 데려올게.”
“왜? 니가 왜? 너 윤호 오빠라고 하면 치를 떨면서?”
“…밤에 너 위험해. 그리고 그런건 남자가 가야지.”
“창민이랑 같이 가는게 더 낫지않아? 오빠 지금 술 취해서 몸도 가누기 힘들텐데.”
윤주가 나를 가리켰다. 나와 같이 가는게 좋겠다는 윤주의 말에 박유천은 고개를 절래 젓는다. 박유천 저 새끼는 왜 지 맘대로야. 뭐든지. 짜증이 나서 박유천을 노려봤다. 박유천은 내 시선을 느끼지 못했는지 고개를 계속 저으며 입을 열었따.
“쟨 같이 가면 짐만 되니깐 그냥 나 혼자 갔다올게.”
“야, 박유천. 나 갈꺼야. 정윤호 데리러.”
“너 그냥 윤주랑 집에 가라, 엉?”
“니가 뭔데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야. 정윤호 데리러 갈꺼야.”
나는 박유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완고하게 말했다. 아, 씨발. 박유천이 짜증을 내며 머리를 헝클였다. 내 손목을 꽉 쥐고 있는 박유천의 손을 털어내려고 하자 박유천이 손에 힘을 넣었다. 아, 진짜 왜 이래. 박유천을 노려보자, 다시 씨발, 씨발거리며 욕을 한다. 욕쟁이 박유천. 윤주가 짜증이 난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떠민다.
“야, 박유천. 그냥 창민이 데려가. 같이 가라, 그냥.”
“아, 씨발.”
“네가 가기 싫음 집에 가! 나 혼자라도 정윤호 데리러 갈테니까!”
“…심창민, 가자.”
내가 가겠다고 끝까지 바득바득 우겼다. 결국 박유천이 내 손목을 끌고 골목을 내려간다. 윤주는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하며 집으로 올라갔다. 골목 끝까지 내려가는 동안 박유천은 말 한마디 없었다. 박유천이 어찌나 내 손목을 세게 쥐었는지 손목이 아렸다. 골목을 벗어났다. 그때서야 박유천을 멈춰세웠다.
“…손목 아퍼.”
아…. 박유천이 이제 알았다는 듯 작게 탄식을 내뱉으며 손을 놓았다. 자신이 내 손목을 쥐고 있었는지조차 몰랐었나보다. 손목에 벌겋게 부어올랐다. 박유천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나있었다. 아린 손목을 다른 쪽 손으로 주물렀다. 박유천은 어떻게 하고 있나 힐끗 쳐다보니 어떻게 해야할 줄 모르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많이 아프냐?”
“손목 끊어질 것 같다. 씹새야.”
“…미안.”
박유천은 남이 아픈 것을 못견뎌한다. 자신의 주위에 누군가가 아프다는 말만 하면 자신이 더 죽을상을 한다. 가끔씩 그런 모습을 보면, 조금은 귀엽다.
“가자. 정윤호 기다리겠다.”
“…….”
서있는 박유천을 뒤로한채 재빨리 길을 나섰다. 정윤호가 기다리고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정윤호에게 가고싶다. 정윤호가 …보고싶다.
“ 너, 끝까지 따라나서려는 이유가… 뭐야.”
“…뭐?”
박유천이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왔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박유천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내가 끝까지 따라나서려는 이유라. 그 모든 이유가 다 정윤호 때문이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너한테 말할 수 있을까.
“재중이형이 나한테 부탁한 일이잖아. 나도 별로 안가고 싶은데 부탁을 받았으니까.”
“단지 그 이유?”
“…그리고 네가 멋대로 나보고 집에 가라고 한 것에 대한 오기도 아주 쪼금?”
“…….”
“됐냐?”
“…정윤호때문은 아니고?”
“응?”
박유천이 무슨 말을 했는데, 순간 옆에 떼거지의 폭주족들이 지나갔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귀를 틀어막아야할 정도였다. 귀를 막아도 들릴 정도로 심하게 요란스럽다. 길고 긴 폭주족 행렬이 지나가고 나서야 사방이 조용해졌다. 저렇게 위험한 오토바이를 왜 탈까? 내 혼잣말에 박유천이 낄낄 웃는다.
“굳이 위험한데 따라나와요, 꼭.”
“시끄러워.”
“빨리 가자. 진짜 정윤호 기다리겠다.”
“…그래.”
이번에는 박유천이 먼저 나를 이끈다. 박유천이 손을 뻗어 내 손을 잡는다. 박유천의 손을 잡을 생각은 아니였지만 박유천이 내 손을 꽉 잡아버리는 탓에 빼지도 못한다. 하지만 박유천의 손은 참 따뜻했다. 박유천을 바라보자 눈이 마주쳤다. 박유천이 뻘쭘한 듯 씩 웃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는 선배가 한다는 그 술집이였다. 얼마 전, 박유천 친구들과의 모임도 여기서 했었다. 가게는 꽤 번화가에 있었기때문에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밤이 많이 늦었는데도 가게 주위는 시끄러웠고, 요란했다. 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박유천이 내 팔을 꽉 잡았다.
“왜?”
“들어가게?”
“당연한거 아냐?”
“그냥 여기 있어. 내가 데리고 나올게, 정윤호.”
“…왜 그래?”
“뭐가.”
“…아니다. 그냥 나도 들어갈래. 가자.”
오늘따라 박유천이 너무 이상하다. 느낌이 이상하다. 자꾸 박유천이 내가 정윤호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아까 집 앞에서 부터 그러는 것이 수상한데…. 괜히 그런 말을 했다가 또 박유천과 입씨름할 것 같았다. 안그래도 피곤한데 그냥 넘어가자싶어서 입을 다물었다. 박유천은 작게 한숨을 쉬더니 먼저 가게 문을 열었다. 가게는 꽤 고급스러웠다.
“희철이형.
“어, 유천아.”
박유천이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노란 머리의 남자를 불렀다. 아, 저 사람이 말로만 듣던 김희철이구나. 매번 올 때마다 저 선배는 가게에 없었다. 가게는 많이 왔었지만 얼굴은 처음 봤다. 박유천이 희철 선배와 인사하는 동안 나는 박유천의 뒤에서 멀뚱하게 서있었다. 희철 선배라는 사람 꽤 예쁘장하게 생겼다. 박유천 말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생또라이라고 그러던데 생긴 건 절대 그렇게 안생겼다. 완전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아, 남자에게 이런 말 하면 기분 나쁘려나.
“혹시, 쟤가…?”
“…어. 심창민. 쟤.”
희철 선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희철 선배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깜짝 놀란 나에게 선배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김희철이예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아…안녕하세요. 심창민입니다. 말 놓으세요, 선배님.”
“아, 너도 선배라고 하지말고 형이라고 불러.”
“…네.”
“예쁘다, 너.”
“…네?”
심창민 인생 18년 동안 처음 들어본 말이다. 예쁘다니. 내가 예쁘다니!!!!
“왜 그런지 알겠다."
“…네? 뭐가요?
“유천이가 너한테 목 매ㄷ…."
“형!
희철이형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박유천이 뒤에서 희철이형의 팔을 잡았다. 희철이형은 그런 박유천을 힐긋 보더니 씩 웃는다. 희철이형이 무슨 말만 하려면 박유천이 아, 형- 그러면서 희철이형에게 눈치를 줬다. 희철이형은 귀여운 놈이라며 박유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박유천이 저렇게 온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이였다.
“우리 유천이 잘 부탁해.”
“…네에.”
“너무 애태우지말고.”
“아, 혀엉!”
희철이형이 자신에게 눈을 흘기는 박유천의 이마를 한대 때린다. 7번 방이야. 애들 있는 곳. 나 이제 일하러 가볼게. 다음에 보자! 손을 붕붕 흔들면서 가게 안쪽으로 가버리는 희철이형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까칠하고 냉정할 것같은 외모와는 전혀 다르게 소탈하고 재미있는 사람같다. 희철이형 생각보다 괜찮다, 안그래? 옆에 서있던 박유천에게 묻자 박유천이 입꼬리를 올려 비웃는다.
“내가 전에 한번 말했지?”
“뭘?”
“세상에 둘도 없는 생또라이라고.”
“…에.”
“아직 처음봐서 이미지 관리 하는데, 몇 번만 더 보면 깜짝 놀랄껄.”
“왜?”
“살다 살다 저런 생또라이는 처음이라서.”
피식거리며 웃는 박유천을 따라 웃었다. 박유천이 말은 이렇게 해도 희철이형을 많이 좋아하고 따르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을 잘 믿거나 따르지않는 박유천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믿을 만하고, 그만큼 괜찮은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7번 룸이라고 그랬지?”
“응. 여기다.”
박유천과 안쪽 룸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꽤 구석진 끝 쪽에 7번 방이 있었다. 얼핏 창문으로 안의 모습이 보이는데 꽤 넓은 듯 했다. 문고리를 잡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박유천이 다시 내 팔을 또 움켜쥐었다.
“…왜? 안들어갈꺼야?”
“내가 먼저 들어갈게. 이번엔 정말 내가 먼저 들어가.”
아까부터 느낀거지만, 오늘따라 얘 정말 왜 이럴까. 쓸데없는데 투정부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꼬마애같다. 더 이상 입싸움 하기 싫어서 문 손잡이를 놓고 한발짝 뒤로 떨어지자, 박유천이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었다.
이미 방은 알코올 특유의 냄새와 담배 연기로 가득 차있었다. 얼마나 마셔댔는지 바닥부터 테이블까지 빈 술병이 나뒹굴었다. 방 안에 있던 남자들이 아직도 서로 술을 주고 받으며 마시고 있는데, 동작이 느릿느릿한게 부정확하다. 잔에 술을 채워주는데 흘리는 술이 반이 넘는다. 보아하니 다들 술을 꽤나 많이 마신 듯하다. 저쪽에 재중이형은 보이는데, 도대체 정윤호는 어디에 있는거지?
“박유천, 심창민.”
“재중이형.”
재중이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 순간, 박유천이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옆에 서있던 내 손목을 잡고 살짝 뒤로 잡아당겼다. 무방비상태로 있던 나는 박유천의 손길에 끌려 박유천 뒤에 서게 되었다.
“윤주는 안왔네?"
“시간이 많이 늦어서 저랑 유천이랑 왔어요."
“…그래. 잠깐만 기다려봐. 윤호, 깨워줄게."
박유천을 아래위로 훏어보는 재중이형의 눈길에 내가 유천이를 뒤로 잡아당겼다. 괜한 시비가 터질까봐 내가 조마조마 했다. 재중이형은 꽤 멀쩡해보였지만, 약간은 비틀거렸다. 재중이형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한쪽 구석 쇼파로 다가갔다.
“야, 정윤호. 윤호야. 일어나봐. 야, 정윤호.”
저쪽 한 구석에서 혼자 자고 있었는 가보다. 재중이형이 정윤호를 흔들어 깨웠다. 재중이형이 여러번 흔들고 깨운 후에야 느릿하게 일어났다. 부시시한 모습으로 눈을 비비며 일어난 정윤호의 모습이 꽤나 귀여워보였다. 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생기는게 느껴졌다. 옆에서 박유천의 시선이 느껴져 재빨리 표정을 굳혔다.
“애들 왔다. 너 빨리 집에 가라. 윤주 걱정한다.”
“…아. 윤주, 우리 윤주.”
키도 큰 정윤호가 휘적휘적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혹시나 쓰러질까봐 내가 팔을 뻗어 정윤호를 잡았다. 박유천도 반대쪽에서 정윤호를 잡았다. 저희 그럼 갈게요. 재중이형에게 박유천이 꾸벅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재중이형의 목소리가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했다.
“유천이, 오랜만인데 형한테 술 한잔 따르고 가지?”
“…네?”
“우리 다들 오랜만에 보는데, 형 유천이가 따라주는 술 한번 먹어보고 싶다. 응?”
재중이형 옆에 있던 사람이 유천에게 웃으면서 앉은채로 술병을 건낸다. 박유천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박유천이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박유천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쳤다. 박유천이 나를 쳐다봤다.
“가봐. 나는 여기 있을게.”
“…….”
“아님 나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정윤호 혼자 부축할 수 있어.”
“…그래. 여기보다는 밖이 더 낫겠다.”
“…….”
“금방 나갈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박유천이 나와 정윤호를 문 밖까지 배웅했다. 그러고는 뒤돌아서 테이블 근처로 다가갔다. 그 모습까지만 보고 나는 정윤호를 부축했다. 맥을 못추는 정윤호를 부축하는 것은 힘들었다. 나와 비슷한 키에, 조금 더 큰 덩치의 사내를, 그것도 술을 마셔 맥을 못추는 남자를 부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땀이 난다. 내 목덜미에 고개를 박고 있는 정윤호가 내쉬는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 따뜻했다.
정윤호를 안다시피해서 가게 밖을 나왔다. 아까에 비해 가게 밖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혹시나 구토를 할까싶어 사람들이 보이지않는 안쪽으로 정윤호를 데리고 갔다. 가게 옆으로 난 약간 좁은 골목이 있었다. 그쪽으로 정윤호를 부축했다. 가로등 바로 밑에 앉았다. 흐린 가로등 불빛이였지만 정윤호의 얼굴이 꽤 잘 보였다.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정윤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는 걸까. 아님 눈을 감고 있는 걸까.
“정윤호.”
“…….”
“정윤호.”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정윤호가 쌕쌕거리며 숨을 내쉴 때마다 내 심장은 마구 뛰어댔다. 이런 기분… 처음이다. 문득 정윤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어깨에 기대고 있는 정윤호의 머리를 무릎으로 옮기려는데, 정윤호가 자신의 머리를 잡고 있는 내 손을 덥썩 잡았다.
잘생긴 손. 정윤호의 잘생긴 손이 맞닿은 곳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정윤호.”
조심스럽게 정윤호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정윤호의 이름을 불렀다. 눈을 감고 있던 정윤호가 천천히 눈을 떴다. 잘생긴 정윤호. 나를 올려다보는 눈마저 잘생긴, 정윤호.
“…정윤호.”
“심창민.”
“…….”
“…이름,”
“…응?”
“이름, 불러줘.”
“…….”
“정윤호말고,”
“…….”
“이름… 불러줘, 이름.
입술이 바싹 마르는 것 같다. 말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리지만 막상 목소리는 나오지않는다. 정윤호가 고개를 흔들며 칭얼댄다. 이름, 빨리 불러줘어. 아이 같은 정윤호의 모습. 몇 번이고 헛기침을 한다. 그제야 목소리가 나온다.
“…윤호형아.”
“…….”
“…윤호야.”
이렇게 불러보는 게 얼마만일까. 정윤호가 유학을 간 후로는 한번도 형이라는 단어를 써본 적이 없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이 제멋대로 흘러내릴 것 같아서 입술을 꽉 다물었다. 정윤호가 천천히 머리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 헝클어진 수트에도 반듯한 정윤호의 눈, 코, 입.
“…고마워.”
“…….”
“다정하게 불러줘서 고마워.”
정윤호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머리칼 안에 손을 넣어 천천히 쓰다듬는다. 간지럽다. 심장 밑 한쪽 구석부터 뭉클하며 올라오는 기분, 도대체 정체가 뭘까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입술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
“…….”
바싹 마른 내 입술을 스치는 정윤호의 따뜻한 입술. 약한 알코올 냄새가 난다. 정윤호가 아랫 입술을 살짝 깨문다. 그것마저 정윤호는 반듯하고, 따스하다. 쌉싸름한 알코올 향이 입 안으로 번진다.입술을 가르며 들어오는 정윤호의 혀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날 만큼 따뜻해서.
정윤호의 참을 수 없는 따스함에 취해있는 그 순간에 무척이나 화가 난 듯한, 그리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나도 낯익은 목소리에 흠칫 놀라며 정윤호를 밀어냈다.
“심창민,”
박유천…. 박유천….
“씨발, 지금 너 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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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리트리버인 맥스는 개 주제에 고급 재료를 사용해서 만든 사료를 먹는다. 거기다가 후식까지 웰빙 시대에 맞춰 뭐 어쩌구 저쩌구, 아무튼 후식조차 몸에 좋은 것으로 먹는다. 집에서 쉬는 일요일에는 맥스의 밥을 내가 챙긴다. 일요일에는 아줌마가 안나오시기 때문에 내가 맥스의 사료를 찾아서 그릇에 담고 손수, 친히 맥스에게 갖다주기까지한다. 개 사료 챙겨주는 게 무슨 대수냐, 개가 손이 있어서 저 혼자 사료를 챙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좀 챙겨주면 어디가 덧나나 할 수 있지만, 오늘같이 기분이 매우 저조한 날에는 개 사료 챙겨주는 일이 몹시 빈정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밥도 못 챙겨먹을 판에, 개새끼 밥은 제 때 안챙겨주면 안된다니. 뭐 이런 아이러니한 경우를 봤나. 정말 이럴 때 느끼는 거지만, 주인 잘 만난 맥스의 팔자가 상팔자다. 어떻게 보면 맥스는 나보다 나은 인생을 살고 있다.
일요일에는 아줌마도 안나오시는 날이고, 일요일에도 바쁜 회장님 덕분에 아버지도 회장님의 스케쥴에 따라 움직이기때문에 보통 거의 세 끼를 나 혼자 해결해야한다. 나는 당최 요리에 소질이 없는 것인지 아무리 요리를 해도 실력이 늘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는 밥보다는 항상 라면을 끓여먹는다. 오늘도 아버지가 회장님의 아침 스케쥴 때문에 나가서 나 혼자 있었다. 아버지가 밥을 차려놓긴했는데, 내가 늦게 일어난 탓에 밥이 식어버렸다. 솔직히 식은 밥은 먹고 싶지않아서 어쩔 수 없이 아침부터 라면을 끓여먹었다.
“맛있냐.”
“멍! 멍!”
“불쌍한 놈. 넌 그렇게 많은 생명체 중에서 왜 하필 개로 태어났냐. 개새끼, 개자식, 개년, 개…. 아무튼 나쁜건 다 개가 붙던데….”
배가 많이 고팠는지 그릇을 내려놓자마자 달려들어 사료를 허겁지겁 먹어대는 맥스의 등을 결을 따라 쓰다듬었다. 맥스는 순해서 밥 먹을 때 건들여도 화내지않는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건들인다는 말은 맥스한테는 안통한다. 천천히 먹어. 아무리 매 끼니마다 비싼 사료를 먹어도 맥스도 나처럼 이 집에 종속된 소유물일 뿐이다. 맥스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불쌍하고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대체 누가 누구보고 안타까워하는 건진 모르겠다만.
“그래도 부럽다. 넌 먹을 복은 타고 났잖니. 난 먹을 복이 없어서 아침부터 라면 끓여먹는다. 짜샤.”
아침부터 밥 대신 라면을 먹었더니 금방 허기가 진다. 라면을 더 끓여먹을까하는 생각에 얼른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저쪽 본가에서 사모님이 걸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무척 오랜만에 보는 사모님이다. 가까이 다가오는 사모님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사모님이 환하게 웃는다. 어머, 창민아.
“안녕하셨어요, 사모님.”
“그래, 오랜만이다. 창민아.”
사모님은 박유천과 무척 닮았다. 우유에 데친 듯한 하얗고 뽀얀 피부는 특히나 더욱.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사모님은 돌아가신 사모님보다 외모는 더 아름다울지는 몰라도 기품이나 우아함같은게 없다. 처음 사모님이 박유천의 손을 잡고 이 집에 왔을 때는 어린 내 눈에도 낯설고 천박해보였다. 짙은 화장에 짧은 치마를 입고 싸구려 향수를 쓰던 전형적인 술집 여자의 모습. 지금은 그나마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짙은 화장과 야한 옷차림은 여전하다.
“요새 어떻게 지내니? 유천이랑도 잘 지내고?”
“…네. 잘 지내고 있어요.”
“우리 유천이, 창민이 네가 좀 챙겨줘. 덩치는 저렇게 커도 아직 애잖아, 그치?”
“…네.”
“이거는 용돈으로 써. 유천이랑 맛있는 것두 사먹구. 응? 알았지?”
나보고 박유천을 챙겨달라며 활짝 웃는다. 사모님의 웃는 모습은 박유천과 똑같다. 박유천은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 아마 사모님을 닮은 것 같다. 사모님이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내 만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내서 내 손에 쥐어준다. 그러고는 작별 인사를 하며 차가 대기하고 있는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오늘도 사모님은 바쁘시다. 오늘도 사모님의 화장은 진하고, 치마는 몹시 짧다.
사모님이 대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 다시 맥스의 집 앞에서 쭈그려앉았다. 츄리닝 주머니에 손을 넣자 딱딱한 담배곽이 손에 쥐여진다. 매일 피는 건 아니고 아주 가끔씩 담배가 정말 피고 싶을 때 한 개피씩 핀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담배 한 곽을 사면 꽤 오래 핀다. 박유천도 가끔 담배를 피긴하지만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다. 아, 박유천은 술과 담배에 민감하다. 자기가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는 것은 나쁘게 생각하지않으면서 나는 절대로 못하게 막는다. 박유천은 자신 스스로에게는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쫀쫀한 놈이다. 나쁜 자식. 박유천을 생각하니까 또 기분이 나빠진다.
그날 싸운 이후로 박유천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일부러 내가 박유천을 피해다녔다. 평소보다 몇 십분 더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정윤호와 윤주와 함께 차를 타고 등교를 한다. 박유천은 혼자서 먼저 가버리는 나에게 별 말이 없었다. 얼굴 보기가 껄끄럽고, 불편해서 내가 도저히 박유천을 평소처럼 대할 수가 없다. 원래 박유천과 자주 싸웠지만, 요즘 들어서 더 자주 싸우는 것 같다. 그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자꾸 박유천과 싸운다. 서로 발톱을 세우고, 경계를 하며 서로를 햘퀸다. 나이를 먹는 탓일까, 예전 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풀렸을 텐데,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
열심히 사료를 먹는 맥스를 두고 본가의 뒷뜰로 갔다. 뒷뜰은 본가 식구들이 거의 오지않는 곳이였다. 이곳은 내가 가끔씩 본가 식구들 몰래 담배를 필 때 애용하는 장소다. 뒷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나무 벤치에 앉았다. 지금은 겨울이라 잔디도 죽고 나무도 앙상해서 볼품없지만, 여름이 되면 이 곳은 참 아름답다. 의자에 깊숙히 기대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야. 맥스야. 저리로 가.”
담배불을 붙이자마자 저 멀리서 맥스가 사료를 먹다가 말고 나에게 달려왔다. 담배 연기를 보고는 폴짝 폴짝 뛰어다니며 멍멍 짖어댄다. 담배 냄새가 매케해서 그런가 싶어서 더 깊숙한 곳으로 가려고 일어서는데 오히려 더 크게 짖어댄다. 왜 그런가 싶어 짖어대는 맥스의 앞에 쪼그려앉자 코를 킁킁거리며 내게 다가온다. 자꾸 내 쪽으로 파고드는 맥스를 손으로 밀어내는 데도 짖으면서 자꾸 파고든다. 덩치는 산만한게 애교를 떠는 건가. 자꾸 밀어내도 다시 돌아온다. 결국 그러려니 싶어서 맥스를 외면하고 담배를 피는데,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누군가가 가져가버렸다.
쪼그려앉아 있는 탓에 다리가 저려 빨리 일어나지를 못하겠다. 윤주인가 싶어서 위를 올려다보니 박유천이 담배를 가져가서는 바닥에 떨어뜨려 꺼버린다. 잔디밭인데 저렇게 담배를 버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우, 저 놈의 맥스. 먹으라고 갖다준 사료는 안먹고 맥스가 자꾸 내 주위를 어슬렁거려서 박유천에게 들켜버렸다. 발 밑에 떨어뜨려 꺼버린 담배를 슬리퍼로 박박 비벼 끄는 박유천을 보고 소리가 나게 코웃음을 쳤다. 웃긴다, 정말. 왠 상관이셔. 담배곽에서 또 다른 담배를 꺼내서 불을 붙이고 입에 물었다. 그런데 박유천이 이번에도 또 가져가버린다. 이번에는 끄지않고 자기가 핀다.
“…박유천, 너 뭐냐.”
“너 폐암 걸려서 뒤지고 싶냐.”
“참나, 지랄하네.”
“난 심창민 네가 나보다 먼저 죽는 꼴 못본다. 죽어도 내가 먼저 죽을 거야.”
“야, 지랄 쌈을 싸먹어라.”
“…….”
나보고는 폐암 걸려서 뒤지고 싶냐며 협박하더니 자기가 담배를 더 맛있게 핀다. 박유천이 담배를 피는 것을 보니까 나도 너무 피고 싶다. 박유천 몰래 살금살금 담배곽을 열어 돛대를 꺼내려는데 박유천이 가져가버린다. 야! 바락 소리 지르는 내 모습에 피식 웃는다. 돛대를 처참하게 밟아버린다. 아, 씨발. 저 귀중한 걸 밟아버리다니. 박유천의 발에 무참히도 밟혀버린 돛대를 바라보다가 박유천을 쳐다봤다. 어찌나 맛있게 피우는지 정말 담배가 말린다. 말려. 괜히 신경질이 나서 너도 폐암 걸려서 죽고 싶냐고 투덜댔다. 박유천은 그저 웃는다. 박유천은 담배 한 개피를 다 피우는 동안 아무 말이 없다. 담배를 거의 다 피우고, 바닥에 비벼 끈다.
“…….”
“…너도 폐암 걸려서 뒤지고 싶냐.”
“나는 심창민 너한테 욕을 하도 많이 얻어먹어서 장수할 것 같다.”
“너, 니가 욕 아-주 많이 얻어먹는거, 알긴 아는구나?”
“나는 욕을 너무 많이 얻어먹어서 장수할 거니까 너도 장수해야지. 근데 심창민 너는 욕 같은거는 얻어먹을 스타일은 아니니까, 니가 알아서 몸 건강 챙겨야지.”
“…….”
“운동도 안하면서, 담배 이런 거 피면 진짜 죽음이다, 죽음. 진짜 젊은 나이에 폐암 걸려 뒤지는 수도 있다니깐?”
“신경 꺼. 남이사.”
“…죽어도 나 먼저 죽을 꺼니까, 넌 오래오래 살아라.”
평소의 박유천 답지않은 진지한 목소리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박유천의 말을 들으니 목구멍이 간질간질하고 명치 끝을 누가 누르는 듯 꽉 아파왔다. 부정타게 자꾸 죽는다는 소리하지마. 괜히 박유천에게 신경질을 냈다. 내 말에 박유천이 씁쓸하게 웃는다. 박유천의 이런 모습 진짜진짜진짜로- 적응이 안된다.
박유천은 어릴 때부터 많은 걸 알았다. 정윤호가 또래 아이들에 비해 성숙하고 철이 들었다면 박유천은 어린 아이들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알았다. 천박한 밤 문화라던가, 잘나가는 회사 우두머리의 정부, 그의 숨겨진 아들로써 살아간다는 것들. 뭐 그런 것들에 대하여. 처음 만난 어린 박유천의 눈은 안쓰러울 정도로 공허함으로 가득 차있었다.
박유천이 머리를 긁적인다.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는지 자꾸 혀를 내밀어 입술에 침을 바른다. 신경 안쓰는 척 하면서 그런 박유천의 모습을 유심히 다 쳐다본다. 그런 박유천을 힐끔 쳐다보는 나도 아무 말이 없고, 박유천도 아무 말이 없다. 끝이 나지않을 듯한 침묵에 숨을 들이키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어색하다. 박유천과 나는 못잡아 먹어서 안달일 것 같이 싸우는 게 정말 잘 어울린다. 정말.
“…미안하다. 심창민.”
“…….”
한참을 조용히 쪼그려 앉아있던 박유천이 입을 열었다. 미안. 미안하다는 박유천의 말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쪼그려 앉아있던 박유천은 이미 일어서있었다. 나도 따라서 일어서서는 박유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많이 헬쓱해진 얼굴. 박유천도 그 동안 힘들었던 걸까. 박유천이 내게 손을 내민다. 화해의 악수라며 박유천이 머뭇거리는 내 손을 잡는다.
“심창민, 이제 싸우지말자.”
“ …….”
“예전처럼 네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거나 그러지않을게. 그래도…,”
“…….”
“…지긋지긋하다는 그런 말을 하지말아줘. 그런 말 들을 때마다,”
“…….”
“힘들다.”
“야….”
“…아니다. 아무튼 앞으로 싸우지말자. 우리 무슨 애도 아니고 열 여덟씩이나 먹어놓고는 매일 싸우냐.”
금새 가벼워진 박유천의 목소리. 박유천이 웃는다. 그런데 자꾸 억지로 웃는 것 같다. 박유천은 항상 저랬다. 어릴 때부터. 초등학교 때 박유천과 싸울 때마다 박유천은 화내다가도 금방 헤헤거렸다. 그런 박유천의 모습을 보고 담임 선생님은 안쓰러워했었다. 나를 붙잡고 박유천에게 잘해주라고 했었다. 박유천은 지금 자신을 감추는 거라고. 저렇게 자신을 감추기만 하다가는 병이 들꺼라고. 제멋대로 도련님처럼 행동하는 박유천을 불쌍한 아이라고 이야기하는 선생님의 말이 이해가 가지않았었다. 선생님의 말은 나이가 들어서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박유천은 애써 스스로를 가벼움으로 포장한다.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일부러 감춰버린다. 상처받기 싫어서. 자신의 본심을 알아버린 사람들이 자신에게 상처를 줄까봐.
나를 향해 웃는 박유천의 입꼬리가 조금 떨렸다. 그런 박유천의 모습을 보자 명치 끝이 아프기 시작했다. 목이 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왼쪽 가슴 저 깊숙한 곳이 시큰거리며 아프기 시작했다. 박유천의 옆에 서있다가는 괜히 이유없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먼저 자리를 떴다.
사실, 내가 왜 이렇게 아픈지, 나도 잘 모르겠다.
*
“요새 유천 도련님이랑 어떻게 지내니?”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와 늦은 저녁을 함께 먹었다. 아버지나 나나 워낙에 말이 없는 성격인데다, 평소 말을 많이 할 기회도 없어서 부자 (父子) 사이치고는 몹시 어색하다. 18년동안 두 사람을 위한 요리를 해온 아버지는 김치찌개 하나는 끝내주게 잘 만든다. 돼지 고기를 넣어 얼큰하게 끓인 김치찌개를 앞에 두고 부자가 마주앉아 밥을 먹는다. 조용히 밥을 먹고 있는데, 아버지가 박유천과 요새 어떠냐며 물었다.
유천 도련님. 아버지는 항상 박유천과 정윤호에게 도련님이라고 불렀다. 윤주에게도 아가씨라고 부르고. 처음부터 그랬다. 코흘리개 정윤호에게도 아버지는 윤호 도련님, 윤호 도련님하며 깍듯이 대했다. 뭐, 그게 당연한거지만. 아버지의 입에서 도련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기분이 묘해진다. 평소 함께 지내는 박유천과 정윤호는 스스럼없는 친구와 다름없는데 유천 도련님과 윤호 도련님은 그것과 다르다. 도련님과 나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놓여있는 것 같다. 범접할 수 없고 감히 넘을 수 없는 벽.
“뭐,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요.”
“니가 좀 잘 챙겨드려. 매일 티격태격 싸우지말고.”
“…네.”
“윤호 도련님도 그렇고…. 윤주 아가씨야 워낙 똑부러지니까 괜찮지만, 윤호 도련님은 한국에 돌아온지 얼마 안됬으니까 창민이 니가 좀 많이 도와드리고. 알았지?”
목이 꽉 막힌 듯한 느낌이 들고, 말이 나오지않았다. 대답을 할 수가 없어 숟가락을 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어서 먹으라며 반찬을 얹어줬다. 억지로 입을 끌어올려 아버지를 향해 웃었다. 아버지에게 차마 털어놓지는 못했지만 그 순간 허탈감과 무력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박유천과 친구처럼 지내지만 결국 박유천과 나는 친구가 아닌 것이다. 고용주와 고용자. 재벌 아들과 운전 기사 아들. 그런 수식어로 정의할 수 있는 박유천과 나의 관계.
“…그리고 말이다, 창민아.”
“네… 아버지.”
“…실은 말이다….”
굳어버린 표정을 억지로 풀고 아버지를 향해 웃었다. 아버지는 눈도 못마주치고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인다. 무슨 말 못할 사정이길래…. 내가 아버지를 멀뚱히 쳐다보자 웃으신다. 우리 아버지, 오늘 다시 보니까 나름 귀여운 면도 있는 것 같다. 아버지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말을 이었다.
“나…, 결혼 하려고.”
“…….”
“…저기 송…씨 아줌마랑….”
“알고 있었어요.”
“…으, 응?”
“아버지랑 아줌마랑… 좋아하고 계신거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구요.”
송씨 아줌마가 괜히 아침 식사에 나를 본가까지 부르는게 아니다. 아버지가 회장님따라서 출장을 가는 날이면 아줌마가 우리집에 와서 반찬이며, 밥이며, 국이며 이것 저것 다 만들어서 냉장고에 차곡차곡 채워넣어주고 빨래까지 해주시는데 정말 엄청난 둔치가 아니면 다 눈치 챌 일이다. 그때는 한번 송씨 아줌마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하는 모습으로 요리를 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 날은 아버지의 생일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아줌마가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은 처음이였다. 아줌마는 같이 식사하고 가자는 내 권유를 뿌리치고, 음식만 만들어주고 가버리셨지만 어쨌든 그 날 이후 둘 사이는 의심할 겨를도 없이 확실했다.
“저도 좋아요.”
“…저, 정말?”
“네….”
친엄마는 나를 낳자마자 돌아가셨고, 홀로 남겨진 아버지가 핏덩이였던 나를 지금까지 혼자 키우셨다. 일가 친척 하나없는 천애 고아로 자란 아버지라 의지할 친척조차 없이 나를 힘들게 키웠지만 그래도 아버지내 앞에서 한번도 찡그리거나 화를 낸 적이 없다. 가끔씩 아버지를 보면 마음이 찌릿찌릿하며 아프다. 지금 아버지의 속은 얼마나 까맣게 타들어갔을까, 하는 생각에.
너그럽지만 소심하고 수줍은 성격인 아버지는 지금까지 여자 한번 제대로 못 만나봤을거다. 내가 어릴 때는 나를 키우느랴 바쁘고, 이제는 회장님 스케쥴이 너무 바쁘니 제대로 쉴 시간도 없으니 가뭄에 콩 나듯 들어오는 중매 자리는 의도치않게 거절하게 된다. 다행히 어릴 때부터 우리 부자와 함께 지내 온 송씨 아줌마와 좋은 관계라니. 이제는 정말 아버지가 행복해지셨으면 좋겠다.
“ 이제는 아버지도 행복해지셔야죠.”
“…나, 나는 창민이 너만 있어도 행복해.”
“그래도 아버지도 아버지만 챙겨주고 사랑해줄 사람이 있어야죠.”
“…고맙다, 창민아.”
언제 다같이 식사나 한번 할까? 아버지의 들뜬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직은 나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낯설고 불편하지만, 다른 세계의 이야기같지만 이제 곧 익숙해지고 좋아지겠지. 이제 아버지가 없는 주말에도 따뜻한 밥을 차려줄 사람이 있고, 학교를 갔다오면 불이 켜져있는 집에 들어올 수 있고, 아프면… 진심으로 함께 아파해줄 사람이 생기겠지….
*
아버지와 회장님, 사모님이 해외로 출장을 가셨다. 뭐, 해외 출장은 종종 있는 일이라서 나도 그렇고 삼남매도 익숙한 일이다. 학교를 일찍 마치고 윤주와 함께 집에 왔다. 박유천은 잠시 친구를 만난다며 나를 먼저 보냈고, 정윤호도 집에 먼저 가버렸었다. 윤주와 본가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2층에서 정윤호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정윤호가 수트를 빼입고 내려오고 있었다. 윤주가 정윤호를 보고 이죽댔다. 왠일이래, 맨날 교복만 입던 정윤호가.
사실 정윤호가 밤에 따로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모습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학교와 집밖에 모르는 것 같았던 정윤호가 왠일이래? 나도, 윤주도 정윤호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정윤호가 낮게 중얼거린다.
“친구 생일이라서.”
아, 뭐야. 정윤호 졸라 똥폼 재려구 목소리 낮게 까는거야? 짜증나. 윤주가 피식 웃으면서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정윤호는 지금 똥폼 재려구 목소리를 낮게 까는 게 아니라 수트를 입은 모습이 스스로 쑥스러워서 그러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모습을 남에게 보여준다는게 어색하겠지.
“갔다올게.”
“…언제 들어와?”
“일찍 올거야.”
“술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고!”
반짝반짝한 구두를 신고 현관문을 나서는 정윤호의 뒷통수를 향해 윤주가 술 조금만 마시라며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정윤호가 뒤를 돌아보며 무표정한 표정으로 서있다가, 씩 웃는다. 다녀올게. 정윤호가 살짝 손을 들고 인사를 한 후, 문을 닫고 나갔다. 윤주가 놓았던 숟가락을 들며 중얼거렸다. 우리 오빠지만 멋있긴 졸라 멋지네.
정윤호, 참 멋있다. 같은 남자인 내가 봐도 멋지다.
윤주가 혼자 집에 있으면 심심하다고 해서 윤주와 내가 간식을 먹으며 본가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사실 나도 집에 가도 아무도 없으니깐 심심했으니 놀다가 가라는 윤주의 제안이 나쁘지않았다. 윤주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12시가 훌쩍 넘었다. 시계를 쳐다보던 윤주가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왜 안와? 술 많이 마셨어?”
정윤호인 것같았다. 그래도 오빠라고 걱정이 됬나보다. 아직 박유천도 집에 오지않았다. 나도 휴대폰을 꺼냈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박유천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 액정에 박유천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깜빡이며 통화음이 들렸다. 맥스보다 못한 놈. 내가 자신을 이렇게 저장한 걸 박유천이 알게되면 나는 뼈도 못추릴 거다. 암.
“ …어, 심창민.”
“지금 시간이 몇신데. 너, 안오냐?”
“지금 들어가는 길이다.”
“빨리 와.”
“왠일이냐. 니가 내 걱정을 다하고.”
저 휴대폰 너머 박유천의 낮게 웃는 목소리가 들린다. 박유천의 웃는 목소리에 괜히 아니꼬와져서 아무튼 빨리와, 말을 툭 던지고 전화를 끊었다. 박유천과의 통화를 끊고 윤주를 쳐다보자 윤주가 한숨을 쉬고 있었다. 왜? 내 질문에 정윤호 병신 새끼라며 욕을 했다.
“술에 쩔어서 재중이 오빠가 대신 전화 받더라.”
“그럼 어떡해? 재중이 형이 데려다 주려나?”
“재중이 오빠가 다른 친구들도 챙겨야되서, 집에 너 있으면 좀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하더라.”
“…아, 그래?”
“나랑 같이 갈래? 미안해, 창민아.”
솔직히 12시가 넘었는데 나가기 귀찮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정윤호의 일이다. 당연히 내가 가야하는 일인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밤공기가 꽤 쌀쌀한 탓에 윤주가 방에서 외투를 가져오고, 나도 집에서 츄리닝 잠바를 입고 대문을 나섰다.
정윤호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한번도 술을 마셨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박유천은 거의 매일 밤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정윤호는 그런 애가 아니였는데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마셨다고 하는데 솔직히 믿기지가 않는다. 왠지 정윤호는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을 것같이 생겼는데, 뭐 또 그게 아닌가보다.
“너네 어디가.”
윤주와 골목을 내려가고 있는데 멀리서 박유천이 걸어오고 있었다. 아직까지 교복 차림이였다. 와이셔츠 단추는 하나 풀어서, 넥타이는 헐겁고 이름표는 또 어디갔는지…. 가방은 한쪽 어깨에 삐딱하게 맨 체, 우리 앞에 멈춰서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윤주와 나도 걸음을 멈추고 박유천을 쳐다봤다. 박유천이 왜 나오냐는 의아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윤호 오빠 술에 쩔어서 몸도 못가눈데. 그래서 창민이랑 데리러 가는 길이야.”
“…정윤호, 어디 갔는데.”
“친구 생일 파티. 재중이 오빠가 창민이보고 데리러 오래.”
“이 씨발… 김재중 이 새끼 진짜.”
이게 어디서 욕질이야! 재중이 형보고 새끼거리는 박유천에게 한마디 하려는데 박유천이 갑자기 내 팔목을 잡았다. 나를 윤주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올라가라는 듯 윤주의 어깨를 밀었다.
“정윤주. 너 그냥 심창민이랑 빨리 집에 들어가라. 내가 정윤호 데려올게.”
“왜? 니가 왜? 너 윤호 오빠라고 하면 치를 떨면서?”
“…밤에 너 위험해. 그리고 그런건 남자가 가야지.”
“창민이랑 같이 가는게 더 낫지않아? 오빠 지금 술 취해서 몸도 가누기 힘들텐데.”
윤주가 나를 가리켰다. 나와 같이 가는게 좋겠다는 윤주의 말에 박유천은 고개를 절래 젓는다. 박유천 저 새끼는 왜 지 맘대로야. 뭐든지. 짜증이 나서 박유천을 노려봤다. 박유천은 내 시선을 느끼지 못했는지 고개를 계속 저으며 입을 열었따.
“쟨 같이 가면 짐만 되니깐 그냥 나 혼자 갔다올게.”
“야, 박유천. 나 갈꺼야. 정윤호 데리러.”
“너 그냥 윤주랑 집에 가라, 엉?”
“니가 뭔데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야. 정윤호 데리러 갈꺼야.”
나는 박유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완고하게 말했다. 아, 씨발. 박유천이 짜증을 내며 머리를 헝클였다. 내 손목을 꽉 쥐고 있는 박유천의 손을 털어내려고 하자 박유천이 손에 힘을 넣었다. 아, 진짜 왜 이래. 박유천을 노려보자, 다시 씨발, 씨발거리며 욕을 한다. 욕쟁이 박유천. 윤주가 짜증이 난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떠민다.
“야, 박유천. 그냥 창민이 데려가. 같이 가라, 그냥.”
“아, 씨발.”
“네가 가기 싫음 집에 가! 나 혼자라도 정윤호 데리러 갈테니까!”
“…심창민, 가자.”
내가 가겠다고 끝까지 바득바득 우겼다. 결국 박유천이 내 손목을 끌고 골목을 내려간다. 윤주는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하며 집으로 올라갔다. 골목 끝까지 내려가는 동안 박유천은 말 한마디 없었다. 박유천이 어찌나 내 손목을 세게 쥐었는지 손목이 아렸다. 골목을 벗어났다. 그때서야 박유천을 멈춰세웠다.
“…손목 아퍼.”
아…. 박유천이 이제 알았다는 듯 작게 탄식을 내뱉으며 손을 놓았다. 자신이 내 손목을 쥐고 있었는지조차 몰랐었나보다. 손목에 벌겋게 부어올랐다. 박유천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나있었다. 아린 손목을 다른 쪽 손으로 주물렀다. 박유천은 어떻게 하고 있나 힐끗 쳐다보니 어떻게 해야할 줄 모르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많이 아프냐?”
“손목 끊어질 것 같다. 씹새야.”
“…미안.”
박유천은 남이 아픈 것을 못견뎌한다. 자신의 주위에 누군가가 아프다는 말만 하면 자신이 더 죽을상을 한다. 가끔씩 그런 모습을 보면, 조금은 귀엽다.
“가자. 정윤호 기다리겠다.”
“…….”
서있는 박유천을 뒤로한채 재빨리 길을 나섰다. 정윤호가 기다리고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정윤호에게 가고싶다. 정윤호가 …보고싶다.
“ 너, 끝까지 따라나서려는 이유가… 뭐야.”
“…뭐?”
박유천이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왔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박유천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내가 끝까지 따라나서려는 이유라. 그 모든 이유가 다 정윤호 때문이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너한테 말할 수 있을까.
“재중이형이 나한테 부탁한 일이잖아. 나도 별로 안가고 싶은데 부탁을 받았으니까.”
“단지 그 이유?”
“…그리고 네가 멋대로 나보고 집에 가라고 한 것에 대한 오기도 아주 쪼금?”
“…….”
“됐냐?”
“…정윤호때문은 아니고?”
“응?”
박유천이 무슨 말을 했는데, 순간 옆에 떼거지의 폭주족들이 지나갔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귀를 틀어막아야할 정도였다. 귀를 막아도 들릴 정도로 심하게 요란스럽다. 길고 긴 폭주족 행렬이 지나가고 나서야 사방이 조용해졌다. 저렇게 위험한 오토바이를 왜 탈까? 내 혼잣말에 박유천이 낄낄 웃는다.
“굳이 위험한데 따라나와요, 꼭.”
“시끄러워.”
“빨리 가자. 진짜 정윤호 기다리겠다.”
“…그래.”
이번에는 박유천이 먼저 나를 이끈다. 박유천이 손을 뻗어 내 손을 잡는다. 박유천의 손을 잡을 생각은 아니였지만 박유천이 내 손을 꽉 잡아버리는 탓에 빼지도 못한다. 하지만 박유천의 손은 참 따뜻했다. 박유천을 바라보자 눈이 마주쳤다. 박유천이 뻘쭘한 듯 씩 웃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는 선배가 한다는 그 술집이였다. 얼마 전, 박유천 친구들과의 모임도 여기서 했었다. 가게는 꽤 번화가에 있었기때문에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밤이 많이 늦었는데도 가게 주위는 시끄러웠고, 요란했다. 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박유천이 내 팔을 꽉 잡았다.
“왜?”
“들어가게?”
“당연한거 아냐?”
“그냥 여기 있어. 내가 데리고 나올게, 정윤호.”
“…왜 그래?”
“뭐가.”
“…아니다. 그냥 나도 들어갈래. 가자.”
오늘따라 박유천이 너무 이상하다. 느낌이 이상하다. 자꾸 박유천이 내가 정윤호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아까 집 앞에서 부터 그러는 것이 수상한데…. 괜히 그런 말을 했다가 또 박유천과 입씨름할 것 같았다. 안그래도 피곤한데 그냥 넘어가자싶어서 입을 다물었다. 박유천은 작게 한숨을 쉬더니 먼저 가게 문을 열었다. 가게는 꽤 고급스러웠다.
“희철이형.
“어, 유천아.”
박유천이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노란 머리의 남자를 불렀다. 아, 저 사람이 말로만 듣던 김희철이구나. 매번 올 때마다 저 선배는 가게에 없었다. 가게는 많이 왔었지만 얼굴은 처음 봤다. 박유천이 희철 선배와 인사하는 동안 나는 박유천의 뒤에서 멀뚱하게 서있었다. 희철 선배라는 사람 꽤 예쁘장하게 생겼다. 박유천 말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생또라이라고 그러던데 생긴 건 절대 그렇게 안생겼다. 완전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아, 남자에게 이런 말 하면 기분 나쁘려나.
“혹시, 쟤가…?”
“…어. 심창민. 쟤.”
희철 선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희철 선배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깜짝 놀란 나에게 선배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김희철이예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아…안녕하세요. 심창민입니다. 말 놓으세요, 선배님.”
“아, 너도 선배라고 하지말고 형이라고 불러.”
“…네.”
“예쁘다, 너.”
“…네?”
심창민 인생 18년 동안 처음 들어본 말이다. 예쁘다니. 내가 예쁘다니!!!!
“왜 그런지 알겠다."
“…네? 뭐가요?
“유천이가 너한테 목 매ㄷ…."
“형!
희철이형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박유천이 뒤에서 희철이형의 팔을 잡았다. 희철이형은 그런 박유천을 힐긋 보더니 씩 웃는다. 희철이형이 무슨 말만 하려면 박유천이 아, 형- 그러면서 희철이형에게 눈치를 줬다. 희철이형은 귀여운 놈이라며 박유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박유천이 저렇게 온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이였다.
“우리 유천이 잘 부탁해.”
“…네에.”
“너무 애태우지말고.”
“아, 혀엉!”
희철이형이 자신에게 눈을 흘기는 박유천의 이마를 한대 때린다. 7번 방이야. 애들 있는 곳. 나 이제 일하러 가볼게. 다음에 보자! 손을 붕붕 흔들면서 가게 안쪽으로 가버리는 희철이형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까칠하고 냉정할 것같은 외모와는 전혀 다르게 소탈하고 재미있는 사람같다. 희철이형 생각보다 괜찮다, 안그래? 옆에 서있던 박유천에게 묻자 박유천이 입꼬리를 올려 비웃는다.
“내가 전에 한번 말했지?”
“뭘?”
“세상에 둘도 없는 생또라이라고.”
“…에.”
“아직 처음봐서 이미지 관리 하는데, 몇 번만 더 보면 깜짝 놀랄껄.”
“왜?”
“살다 살다 저런 생또라이는 처음이라서.”
피식거리며 웃는 박유천을 따라 웃었다. 박유천이 말은 이렇게 해도 희철이형을 많이 좋아하고 따르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을 잘 믿거나 따르지않는 박유천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믿을 만하고, 그만큼 괜찮은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7번 룸이라고 그랬지?”
“응. 여기다.”
박유천과 안쪽 룸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꽤 구석진 끝 쪽에 7번 방이 있었다. 얼핏 창문으로 안의 모습이 보이는데 꽤 넓은 듯 했다. 문고리를 잡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박유천이 다시 내 팔을 또 움켜쥐었다.
“…왜? 안들어갈꺼야?”
“내가 먼저 들어갈게. 이번엔 정말 내가 먼저 들어가.”
아까부터 느낀거지만, 오늘따라 얘 정말 왜 이럴까. 쓸데없는데 투정부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꼬마애같다. 더 이상 입싸움 하기 싫어서 문 손잡이를 놓고 한발짝 뒤로 떨어지자, 박유천이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었다.
이미 방은 알코올 특유의 냄새와 담배 연기로 가득 차있었다. 얼마나 마셔댔는지 바닥부터 테이블까지 빈 술병이 나뒹굴었다. 방 안에 있던 남자들이 아직도 서로 술을 주고 받으며 마시고 있는데, 동작이 느릿느릿한게 부정확하다. 잔에 술을 채워주는데 흘리는 술이 반이 넘는다. 보아하니 다들 술을 꽤나 많이 마신 듯하다. 저쪽에 재중이형은 보이는데, 도대체 정윤호는 어디에 있는거지?
“박유천, 심창민.”
“재중이형.”
재중이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 순간, 박유천이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옆에 서있던 내 손목을 잡고 살짝 뒤로 잡아당겼다. 무방비상태로 있던 나는 박유천의 손길에 끌려 박유천 뒤에 서게 되었다.
“윤주는 안왔네?"
“시간이 많이 늦어서 저랑 유천이랑 왔어요."
“…그래. 잠깐만 기다려봐. 윤호, 깨워줄게."
박유천을 아래위로 훏어보는 재중이형의 눈길에 내가 유천이를 뒤로 잡아당겼다. 괜한 시비가 터질까봐 내가 조마조마 했다. 재중이형은 꽤 멀쩡해보였지만, 약간은 비틀거렸다. 재중이형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한쪽 구석 쇼파로 다가갔다.
“야, 정윤호. 윤호야. 일어나봐. 야, 정윤호.”
저쪽 한 구석에서 혼자 자고 있었는 가보다. 재중이형이 정윤호를 흔들어 깨웠다. 재중이형이 여러번 흔들고 깨운 후에야 느릿하게 일어났다. 부시시한 모습으로 눈을 비비며 일어난 정윤호의 모습이 꽤나 귀여워보였다. 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생기는게 느껴졌다. 옆에서 박유천의 시선이 느껴져 재빨리 표정을 굳혔다.
“애들 왔다. 너 빨리 집에 가라. 윤주 걱정한다.”
“…아. 윤주, 우리 윤주.”
키도 큰 정윤호가 휘적휘적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혹시나 쓰러질까봐 내가 팔을 뻗어 정윤호를 잡았다. 박유천도 반대쪽에서 정윤호를 잡았다. 저희 그럼 갈게요. 재중이형에게 박유천이 꾸벅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재중이형의 목소리가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했다.
“유천이, 오랜만인데 형한테 술 한잔 따르고 가지?”
“…네?”
“우리 다들 오랜만에 보는데, 형 유천이가 따라주는 술 한번 먹어보고 싶다. 응?”
재중이형 옆에 있던 사람이 유천에게 웃으면서 앉은채로 술병을 건낸다. 박유천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박유천이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박유천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쳤다. 박유천이 나를 쳐다봤다.
“가봐. 나는 여기 있을게.”
“…….”
“아님 나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정윤호 혼자 부축할 수 있어.”
“…그래. 여기보다는 밖이 더 낫겠다.”
“…….”
“금방 나갈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박유천이 나와 정윤호를 문 밖까지 배웅했다. 그러고는 뒤돌아서 테이블 근처로 다가갔다. 그 모습까지만 보고 나는 정윤호를 부축했다. 맥을 못추는 정윤호를 부축하는 것은 힘들었다. 나와 비슷한 키에, 조금 더 큰 덩치의 사내를, 그것도 술을 마셔 맥을 못추는 남자를 부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땀이 난다. 내 목덜미에 고개를 박고 있는 정윤호가 내쉬는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 따뜻했다.
정윤호를 안다시피해서 가게 밖을 나왔다. 아까에 비해 가게 밖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혹시나 구토를 할까싶어 사람들이 보이지않는 안쪽으로 정윤호를 데리고 갔다. 가게 옆으로 난 약간 좁은 골목이 있었다. 그쪽으로 정윤호를 부축했다. 가로등 바로 밑에 앉았다. 흐린 가로등 불빛이였지만 정윤호의 얼굴이 꽤 잘 보였다.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정윤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는 걸까. 아님 눈을 감고 있는 걸까.
“정윤호.”
“…….”
“정윤호.”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정윤호가 쌕쌕거리며 숨을 내쉴 때마다 내 심장은 마구 뛰어댔다. 이런 기분… 처음이다. 문득 정윤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어깨에 기대고 있는 정윤호의 머리를 무릎으로 옮기려는데, 정윤호가 자신의 머리를 잡고 있는 내 손을 덥썩 잡았다.
잘생긴 손. 정윤호의 잘생긴 손이 맞닿은 곳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정윤호.”
조심스럽게 정윤호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정윤호의 이름을 불렀다. 눈을 감고 있던 정윤호가 천천히 눈을 떴다. 잘생긴 정윤호. 나를 올려다보는 눈마저 잘생긴, 정윤호.
“…정윤호.”
“심창민.”
“…….”
“…이름,”
“…응?”
“이름, 불러줘.”
“…….”
“정윤호말고,”
“…….”
“이름… 불러줘, 이름.
입술이 바싹 마르는 것 같다. 말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리지만 막상 목소리는 나오지않는다. 정윤호가 고개를 흔들며 칭얼댄다. 이름, 빨리 불러줘어. 아이 같은 정윤호의 모습. 몇 번이고 헛기침을 한다. 그제야 목소리가 나온다.
“…윤호형아.”
“…….”
“…윤호야.”
이렇게 불러보는 게 얼마만일까. 정윤호가 유학을 간 후로는 한번도 형이라는 단어를 써본 적이 없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이 제멋대로 흘러내릴 것 같아서 입술을 꽉 다물었다. 정윤호가 천천히 머리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 헝클어진 수트에도 반듯한 정윤호의 눈, 코, 입.
“…고마워.”
“…….”
“다정하게 불러줘서 고마워.”
정윤호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머리칼 안에 손을 넣어 천천히 쓰다듬는다. 간지럽다. 심장 밑 한쪽 구석부터 뭉클하며 올라오는 기분, 도대체 정체가 뭘까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입술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
“…….”
바싹 마른 내 입술을 스치는 정윤호의 따뜻한 입술. 약한 알코올 냄새가 난다. 정윤호가 아랫 입술을 살짝 깨문다. 그것마저 정윤호는 반듯하고, 따스하다. 쌉싸름한 알코올 향이 입 안으로 번진다.입술을 가르며 들어오는 정윤호의 혀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날 만큼 따뜻해서.
정윤호의 참을 수 없는 따스함에 취해있는 그 순간에 무척이나 화가 난 듯한, 그리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나도 낯익은 목소리에 흠칫 놀라며 정윤호를 밀어냈다.
“심창민,”
박유천…. 박유천….
“씨발, 지금 너 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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